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성패(成敗)를 좌우하게 될 앙겔라 메르켈(61) 독일 총리에게 또 다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2일(현지시간) 개최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사태의 최종 결론이 날 예정이지만, 결국은 ‘유럽의 대통령‘으로서 군림해온 메르켈 총리의 의중에 모든 게 달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세계 경제가 출렁일 수도, 유럽통합이 더욱 공고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2005년 총리가 된 이후 글로벌 정치외교 무대를 주도하며 쌓아왔던 그녀의 명성이 더 빛날 수도, 반대로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만큼 메르켈 총리로서도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관건은 그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긴축 프로그램과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원칙론을 양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메르켈은 유로존 각국의 재정 안정을 위해 그동안 그리스 뿐만 아니라 유로존 모든 국가에게 강도 높은 긴축 프로그램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생산기반이 취약한 그리스로서는 더 이상 긴축하면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아우성을 쳐왔다. 아울러 메르켈은 부채탕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이런 방침이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아 90%를 빚을 되갚는데 쓰는 악순환에 빠지게 하면서 현 사태를 야기했다는 비난에 휩싸였었다.
현재로선 메르켈 총리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영국 BBC 방송은 8일 “독일 내부에선 차라리 그리스를 유로존 밖으로 걷어차라는 요구가 많아 메르켈 총리로서도 움직일 여지가 별로 없다”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독일에선 빚을 의미하는 ‘schulden’에 ‘죄’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면서 “그리스가 파산하면 인도적 지원금을 줄 수 있어도 빚을 탕감해줘선 안 된다는 게 독일의 원칙”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메르켈의 지난 10년 업적 중 으뜸은 ‘유럽 통합의 공고화’였다. 유럽이 경제·정치적 통합을 통해 종국에는 하나의 국가처럼 돼야 한다는 원대한 ‘대륙 통합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 지난 10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단순히 그리스만 빠져나가면 좋겠지만 그리스의 이탈을 계기로 유럽 각국이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미국 매체 더 뉴요커는 ‘메르켈이 유럽의 이상을 구해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이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겨둠으로서 ‘유럽 통합’의 메시지를 다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르켈의 선택의 순간이 임박해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등 경제학자 5명은 공개서한을 통해 “역사는 메르켈이 한 행동을 기억할 것”이라며 그리스에 양보할 것을 촉구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3선 연임에 성공해 2017년까지 임기를 채우면 11년 집권한 영국 마가렛 대처 총리의 기록을 넘기게 된다. 영광의 12년 재임이 될지, 원망의 재임이 될지 갈림길에 섰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메르켈의 선택은
입력 2015-07-08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