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유승민 거취 정국이 남긴 것-건강한 당청 관계는 아직도 먼 꿈

입력 2015-07-08 17:06
이동희 기자

결국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났다. 유 원내대표를 지지했던 새누리당 내의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사퇴를 촉구했던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의 표정도 무거웠다. ‘유승민 거취’ 정국은 이렇게 승자 없이 패자들만 남기고 막을 내렸다.

새누리당은 8일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표결 없이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권고안을 추인했다. 유 원내대표는 김무성 대표로부터 의총의 결정사항을 전달받고 사퇴했다. 유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실을 찾아 ‘원내대표 직을 내려놓으며’라는 제목의 사퇴 회견문을 읽었다. 지난 2월 2일 새누리당 의원들의 투표로 뽑혔던 유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사퇴 권고를 받고 157일 만에 물러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유 원내대표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여권이 감추고 싶었던 병폐들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아직도 수직적인 당청 관계와 여전히 뿌리 깊은 계파 갈등이 여실히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규정하면서 거취 논란이 촉발됐다.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들은 양비론적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청와대가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의 사퇴를 강요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도 “유 원내대표가 해답 없는 주장을 펼치면서 청와대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갈등을 초래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둘로 갈라졌다. 친박들은 일사분란하게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위해 움직였다. 이에 비박들도 세를 규합하며 맞섰다. 서로 물고 뜯으며 상처만 깊어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고통 받는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안싸움, 내분, 계파갈등, 내전이라는 비판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계파 갈등의 본질은 내년 4월 총선 공천권 싸움이라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사퇴로 여권의 병폐들이 나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수도권 한 의원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지켜 본 청와대가 당을 더욱 더 좌지우지 하려고 들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새누리당을 하부조직으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기 전에는 건강한 당청 관계는 요원한 꿈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했지만 계파 갈등은 오히려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다른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유승민 거취 정국을 거치면서 패인 골을 수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친박과 비박이 사사건건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자신들도 갈라져 싸우면서 어떻게 국민통합을 얘기하겠느냐는 자조가 높다. 소장파 의원은 “당청 갈등으로 인해 여당에 대한 민심이 보통 사나운 것이 아니다”면서 “처절한 반성이 없으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