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밝힌 ‘사퇴의 변’에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는 없었다. 대신 그는 국민과 당원에 대한 죄송함, 법과 정의를 지키겠다는 신념, 임기를 채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회 정론관에 선 유 원내대표는 준비해온 원고를 담담하게 읽어 나갔다. A4용지 2장 분량의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으며’였다. 그는 “고된 나날을 살아가는 국민 여러분께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크다”며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유 원내대표는 본인의 거취를 논의하는 의원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오전 내내 의원회관 사무실에 머물렀다. 원고도 직접 쓰고 다듬었다고 한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다음부터였다. 유 원내대표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정의”라고 했다. 이어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지난 2주간 친박(친박근혜)의 대대적인 사퇴 압박에도 버텼던 이유를 처음으로 직접 밝힌 것이다. 당청 갈등이 불거진 데 대한 소회나 ‘배신의 정치’ 등을 언급한 박 대통령과 관련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한 지난달 25일과 이튿날 공개석상에서 “송구하다”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월 당의 변화와 혁신, 총선 승리를 약속드리고 원내대표가 됐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는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 측 인사들은 ‘아직’이란 표현에 의미를 뒀다. 한 의원은 “따뜻한 보수, 합의의 정치는 원내대표로서가 아니라 정치인 유승민이 추구하는 가치”라며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유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승용차에 오르기 전 “그동안 고생하셨다.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한 게 전부였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유승민 사퇴의 변에 박근혜는 없었다... "국민과 당원에 죄송, 법과 원칙 정의 지키고 싶었다"
입력 2015-07-08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