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벌인 2차 소송전에서도 승리했다. 지난주 국제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면서 위기에 몰렸던 삼성 측은 법원의 결정으로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치열한 표 대결을 앞두고 단일주주로는 지분이 가장 많은 국민연금의 결정에 무게가 더 실릴 전망이다.
◇법원, “자사주 매각은 정당, 합리적인 경영활동”=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용대)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낸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7일 밝혔다.
쟁점은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 899만주(5.76%)의 정당성 여부였다. 법원은 “자사주 처분은 주주총회에서 합병계약서를 승인하는 결의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번 합병이 삼성물산과 주주에게 손해라고 보기 어려운 만큼 자사주 매각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자사주 처분은 신주발행과 달라 신주발행 규정이나 법리를 유추적용할 수 없다”며 “자사주 처분이 오로지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지배권 유지만을 위한 것으로 회사나 주주일반의 이익에 반한다면 무효가 되지만 이번 합병은 그렇게 볼 수 없다”고도 했다. 당초 엘리엇은 자사주 전량을 매각한 것이 불공정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며, 기존 주주들의 의결권을 희석시킨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자사주 처분이 신주를 발행해 우호지분을 확보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느냐에 대해 기존 판결도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신주발행 효과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인수할 기회를 보장하지 않은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무차별 소송을 통해 주주들의 정당한 의사결정 기회마저 원천봉쇄하겠다는 해외 헤지펀드의 의도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라며 법원의 결정을 반겼다. 반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사주를 매각한 행위가 기업지배구조 관점에서 전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법원의 결정에 항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 선택에 관심 집중=법원의 결정으로 자사주를 포함한 20% 가량의 삼성 우호지분이 확고해지면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의결권 있는 지분 11.21%를 보유해 삼성 입장에선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잇따라 합병 반대를 권고하는데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도 합병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국민연금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사 합병은 삼성그룹 총수일가 3세들의 지배권 승계와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임시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양사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상진 양민철 기자 sharky@kmib.co.kr
법원, 엘리엇 가처분 모두 기각, 국민연금 선택에 관심 집중
입력 2015-07-07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