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서 유일하게 넘치는 건 인내심, 하지만 그마저도...

입력 2015-07-07 17:10 수정 2015-07-07 17:11

그리스 수도 아테네 서쪽의 해변 도시 피라에우스의 한 약국에는 진열대 대부분이 비어 있다. 손님도 뚝 끊겼다. 약 공급이 줄어든 데다 약국에 와도 살 수가 없어서다. 약이 줄어든 것은 외국 제약사들이 그리스에 판매를 꺼리는 데다 사고 싶어도 금융거래가 중단돼 거래를 할 수 없거나 약을 수입할 돈마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암 치료제 같은 꼭 필요한 약도 속속 동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6일(현지시간) 그리스의 이런 풍경을 전하면서 “현재 뭐든지 다 부족한 그리스에 유일하게 한 가지 넘치는 것이 사람들의 인내”라면서 “하지만 머지 않아 그런 인내도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그리스의 사재기 열풍을 전하면서 “그리스인들 사이에 피포위심리(siege mentality·항상 적들에게 포위돼 있다는 강박관념)가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사재기 현상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사람들은 ATM(현금자동인출기)에서 남보다 먼저 돈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은행들의 돈이 바닥나면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ATM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내 곳곳에 차를 타고 다니며 ‘ATM 현금 사재기’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현금도 바닥나자 그리스 은행들은 6일부터는 하루 60유로(약 7만4700원)이던 1일 인출제한액을 50유로(약 6만2000원)으로 줄였다.

산업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소비가 급감하는 바람에 생산인력을 줄일 수밖에 상황에 몰리고 있다. 직원들을 강제로 휴가 보내는 회사들이 속출하자 그리스 중소기업협회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게 “제발 좀 살려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광업계가 타격이 가장 심하다. 관광객이 절반 가까이 줄면서 여름 성수기에 대비해 미리 잔뜩 주문해놓은 고기와 식음료 등이 처치 곤란해졌다. 크레타 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알렉스 아겔로풀로스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미리 사놓은 식품의 70%는 수입해온 것들”이라며 “구제금융 사태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정말 온 나라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