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선택은 ‘오히(Oxi)’

입력 2015-07-06 19:58

그리스의 선택은 ‘오히(Oxi·아니오)’였다. 지금으로서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현대판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될지, 새로운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이 될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점은 위험하게만 보였던 치프라스 총리의 ‘도박’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강대국들을 거세게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5일(현지시간) 치러진 국제 채권단 협상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에서 61.3%의 그리스 국민들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그리스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2차 구제금융이 이미 종료된 터라 국민투표의 실효성이 우려됐던 것과 달리 국제 채권단은 그리스 정부와 재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반대’ 결과가 나왔음에도 6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국제 채권단과 치프라스 총리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후퇴라는 분석이다.

최악의 경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국민투표 이후 협상 일정은 빠르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6일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및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과 전화회의를 가진 데 이어 양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그리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7일 유로존 정상회의를 소집했다.

국제 채권단은 지난달 28일 제시했던 최종안과 유사한 수준의 구제금융 긴축 프로그램을 제안할 전망이다. 국제 채권단은 지금까지 연금제도 등 복지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혁해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리스의 재무를 일부 탕감해야 한다는 내용의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 내용과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이번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긴축 프로그램 수준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정부는 채무 일부 탕감에 대한 협상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스 측이 투표를 앞두고 최종적으로 제안했던 ‘양보안’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지 관건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치프라스 총리와 메르켈 총리 등을 비롯한 국제 채권단 측의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에 협상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렉시트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스는 이번 투표가 유로화 포기 여부를 묻는 투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독일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투표 결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드라크마(그리스 옛 화폐)로 돌아갈 수도 있다. ECB가 그리스 은행에 유동성 지원을 해 주지 않을 경우다. BNP파리바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컨설팅업체들은 국민투표 결과로 그렉시트 가능성이 70%가량으로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