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형 살해한 고교생 무죄, 배심제 논란

입력 2015-07-06 16:46

‘재판부의 소신이냐.’ vs ‘배심원들의 판단이냐.’

친형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10대 고교생이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살인 행위가 명백한 이 사건 피고인이 무죄로 석방되자 2008년부터 도입된 배심제에 대한 ‘기속력(판결에 대한 구속력)’ 논란이 일고 있다.

춘천지법 제2형사부는 지난 3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임모(15)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폭력을 제지하려고 흉기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고, 흉기로 찌른 곳이 급소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던 만큼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없이 재판부가 임의로 판단할 수 없어 피의자를 석방한다”고 판시했다.

형제의 비극은 지난 4월 1일 오전 2시쯤 춘천시 후평동의 한 다세대 주택 2층에서 벌어졌다.

고3인 임군의 형은 술에 취한 채 귀가해 만화를 보던 동생의 배를 밟고 주먹으로 옆구리 등을 수차례 때렸다. 임군이 밀치며 반항하자, 형은 임군의 목을 팔로 감아 조르기 시작했고 임군은 “살려 달라”고 외쳤다.

잠에서 깬 이들의 부모는 형제들을 떼어 놓았지만 평소 형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임군은 주방에 있던 흉기로 형의 가슴 부위를 1차례 찔렀다. 형은 과다 출혈로 인해 숨졌고, 임군은 형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배심원 9명은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다. 재판부도 고심 끝에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해 임군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오전 11시쯤 시작된 국민참여재판이 오후 9시에 종결된 점으로 볼 때 당시 재판이 얼마나 큰 진통을 겪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임군이 ‘범행의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석방되자 배심제의 기속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측은 “범죄 행위가 명백한 사건임에도 재판부가 직권 판단하지 않고 배심원 평결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배심원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므로 평결에 오류가 없도록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고, 오류가 났다면 재판부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2008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7년간 춘천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모두 25건으로, 이 중 재판부와 배심원의 의견이 엇갈린 것은 4건이다.

춘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