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강제징용 사실을 시인케 함으로써 ‘과거사 이니셔티브’를 장악했다는 평가다.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가 높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나면서, 정부는 꽉 막힌 한·일 관계의 근본 원인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다음달 예정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기념담화’(아베 담화)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하는 순간, 위원국 대표들은 우리측 수석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2차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축하 ‘인파’는 일본보다 오히려 배 이상 많았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 피해와 식민지배, 강제 징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표현 ‘형식’에 대해서는 일본에 양보했다. 등재 결정문(Decision) 대신 주석(footnote)에 넣은 것이다. ‘절반의 승리’란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추후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에 대비한 전략적 포석이란 해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일본과의 협상은 향후 수십 년을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아베 정권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향적인 자세는 아니지만, 아베 총리가 고노·무라야마 담화 유지를 천명했고, 8월 발표할 아베 담화에 대해서도 ‘과거사 부정’기조가 아닌 ‘과거사 인정’의 수위를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담화 관련 총리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좌장 대리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국제대학 학장은 최근 “총리에게 제출할 보고서에 일본의 ‘침략’사실을 넣겠다. 담화에 ‘침략’ 표현을 넣을지는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물러섰다.
일본 여론도 심상치 않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4~5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3%를 기록해 2012년 12월 집권 이후 처음으로 지지 여론을 넘어섰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갈등 확대가 지지율 하락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일단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과거사 공세에 일본 자민당 정권 특유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가 바뀌는 양상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초 이뤄진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합의와 2년째 진행중인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압박수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다음은 위안부-아베담화가 분수령
입력 2015-07-06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