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자칼럼]대구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오해와 이해의 사이에서"

입력 2015-07-06 13:49

누가 만든 이야기지만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의사가 응급수술을 위한 긴급전화를 받고 병원에 급히 들어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사는 병원 복도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년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의사를 보자마자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오는데 하루 종일 걸리나요? 당신은 내 아들의 생명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나요? 의사로서 어떤 책임 의식도 없나?’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달랬다. ‘죄송합니다. 제가 외부에 있어서 전화 받자마자 달려 왔습니다. 수술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아버님…’ ‘진정하라고? 만약 당신의 아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소년의 아버지는 매우 화내며 말했다.

의사는 다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분명 신의 가호가 있을 겁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편안히 말하는 구먼’ 몇 시간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다행히 수술 잘되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간호사에게 물어보세요.’라며 소년의 아버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의사는 달려 나갔다.

‘저 의사는 왜 이렇게 거만한가요? 내 아들의 상태를 묻기 위해 몇 분도 기다릴 수 없는 건지 참…’ 수술실에서 나온 간호사에게 말했다. 간호사는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보이며 ‘의사 선생님의 아들이 어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례 중 수술 전화를 받고 급히 들어온 겁니다. 아드님의 목숨을 살리고 장례를 마무리하려고 가신 거예요.’-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량의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한다. 듣기는 속히 할 것이지만 말하기는 더디 할 것이라고 말이다.(야고보서 1장 19절) 우리가 하는 말이 가지는 엄청난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시고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시편 141장 3절)

오늘 아침에 읽고 묵상한 말씀 가운데 여호수아 2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 가운데 있었던 해프닝을 하나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요단강 동쪽 지역에 정착하게 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강가에 큰 제단을 쌓은 일이다. 이들이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요단강 서쪽 즉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다른 지파 사람들이 동쪽지역에 정착한 사람들과 싸우려고 했다. 출애굽하던 시기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신을 섬기다가 재앙을 입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동쪽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온 민족이 재앙을 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대를 동원해서 동쪽지방 사람들과 싸우려고 했다. 이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찰나였다.

서쪽지역에 정착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몇 명의 대표를 선발해서 동쪽지역으로 보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제단을 쌓은 것은 다른 신을 섬기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동쪽과 서쪽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것도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기 위한 선한 목적으로 세우게 됐음을 알게 됐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서쪽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좋게 생각하고 돌아가게 됐다. 자칫 큰 싸움이 일어나고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 수 있었는데 대화로써 오해를 풀었던 것이다.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언 18장 13절) 내가 섣부른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한다.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야고보서 1장 19절). 듣자. 듣자. 또 듣자.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자.



이국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