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인물화로 유명한 김호석(58) 작가는 다섯 살 때부터 붓을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예를 배우고 사군자를 치기도 했다. 50년 넘게 그림을 그려온 셈이다. 수묵에 매달리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국내 몇 안 되는 전업 작가로 발판을 다졌다. 특히 그의 수묵 인물화는 작품성이나 대중성 면에서 정평이 나 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에 걸려 있는 한복 입은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와 안경을 낀 다산 정약용 초상화, 성철과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 그가 이번에 세월호 참사와 윤일병 사건을 소재로 한 전시를 7월 6일부터 8월 16일까지 서울 고려대 박물관에서 연다. 전시 제목은 ‘틈,’이다. 신작과 이전 작품 100여점을 내놓았다.
틈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말한다. “조금만 빈틈이 있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너무 틈이 없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틈은 결핍 또는 미완성을 상징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을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강박적으로 채우고자 한다. 또한 틈은 충만의 공간이자 잉태의 공간이다. 새로운 것들이 자라 채워질 빈 공간이다.”
작가는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주제로 한 역사화도 작업했다. 그는 “한때 그림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림이 사회 속에 녹아 들어가 작은 틈을 메웠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그의 말대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나 군대 내 폭행으로 사망한 윤일병 사건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그려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세월호 사건 이후 팽목항을 네 번 정도 다녀왔다. 유가족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밤에 낚시를 하고 있더란다. 사람이 죽었는데 물고기를 잡아먹을 정신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기다려봤더니 그 사람은 이내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한참을 바라본 뒤 다시 놓아주더라는 것이다. 밤바다가 울렁거리며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생각했다. 물 속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물고기 밖에 없기에, 가족의 생사를 물고기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유가족의 마음이 저런 것인가. 당시 팽목항에는 유난히 호랑나비가 많았다고 한다. 물 속을 아는 건 물고기, 물 밖을 아는 건 나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존재들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화면에 옮긴 것이다.
작품 ‘흰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것’에선 닭이 품고 있는 여러 병아리의 윤곽이 선명하지 않고 희미하게 드러난다. ‘내음으로 기억되다’라는 작품에는 군부대에서 보내온 장정소포 상자가 보이고 여기서 옷을 꺼내 든 한 여성이 코를 맡아 냄새를 맡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식인 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는 주름 많은 손으로 끌어안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작가는 “상징, 비유, 은유가 이번 작품에선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 현상을 보면서 나는 똑바로 살았는가, 이해관계에 빠진 적은 없는가, 돈을 위해 초상화를 그리진 않았는가 자문했다. 그 결과 ‘그랬다’는 답에 스스로 반성했다”고 했다. 처절한 슬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또다시 초상화를 그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익명의 존재를 그려 공공기관에 기증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답했다. 전시 제목 ‘틈,’은 작가가 틈을 두고 바라본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틈’에 쉼표를 더했다. 작가는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가로 유명하다.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 ‘올해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동시대 작가로서는 드물게 초중고 미술 교과서에 10여점의 그림이 실려 있기도 하다.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고려대 교수)은 ‘핍진한 필력으로 맑은 생명을 불어넣다’라는 제목의 전시 서문에서 “끊임없는 관찰과 연구, 작가로서의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전하고 있다”고 평했다(02-3290-151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노무현 대통령 등 수묵인물화 김호석 작가 세월호와 윤일병 사건 주제 '틈,' 고려대박물관 7월6일부터
입력 2015-07-06 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