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냐고? 리메이크 같지 않은, 리메이크를 표방하지 않은 리메이크라는 얘기다. ‘십계’가 신을 오로지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숭앙하는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엑소더스’는 좀 더 인간적인 관점에서 신에게 접근한다. 이를테면 이집트가 모세의 요구를 거부하고 유대인들을 노예상태에서 풀어주지 않자 신이 재앙을 내려 이집트인들은 모두 장자(長子)를 잃는다. 자신도 아들을 잃은 람세스왕이 기가 막혀서 모세에게 “이런 신을 너희는 믿는 건가“라고 항변하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십계'의 하이라이트라 할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은 ‘엑소더스’에서는 종교적 기적이 아니라 과학적 현실로 대체된다. 썰물 때 물이 많이 빠져나가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는 식으로. 그래서 위키피디아는 ‘십계’를 ‘종교영화’로, ‘엑소더스’는 ‘판타지영화’로 분류해놓고 있다.
게다가 출연진도 그렇다. 영화를 본 첫 느낌은 역시나 크리스천 베일은 찰턴 헤스턴이 아니고, 특히 조엘 에저튼은 결코 율 브리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십계’의 모세역 찰턴 헤스턴이나 람세스역 율 브리너가 다소 과장해 인간이면서도 마치 신에 가까운 풍모를 보여주는, 장엄한 대형 사극형 배우들이었다면 ‘엑소더스’의 모세 크리스천 베일이나 람세스 조엘 에저튼은 고만고만한 현실의 인간형 배우들이라고나 할까, 대형 서사극의 주인공으로서는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했다. 물론 연기력이 모자라는 건 아니고, 좀 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출애굽기를 만들고 싶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생활형’ 인간의 체취를 강하게 풍기는 배우들을 기용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헤스턴이나 브리너에 비해 뭔가 많이 모자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리메이크 영화의 고민은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얼마나 원작과 다르게 만드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작과 똑같으면 다시 볼 필요가 없고 그렇다고 너무 다르면 아예 새 영화가 돼 원작의 이점을 누리지 못할 테니까. 물론 이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작품)을 워낙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그가 만든 원작을 장면 하나 하나까지 고스란히 베껴낸 거스 밴 샌트 감독의 ‘사이코(1998)’ 같은 영화는 제외하고 하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리메이크 같지 않은 리메이크 영화들이 나오곤 한다. 그중 하나가 리메이크임에 분명한데도 속편의 탈을 뒤집어쓴 ‘나바론2(Force 10 from Navarone)'다. 원작에서 그레고리 펙이 맡았던 맬로리 대위(속편에서는 소령으로 진급)를 로버트 쇼가 맡았고 에드워드 폭스가 밀러 상병역을 맡았지만 당연히 쇼는 결코 펙이 될 수 없었고, 폭스도 데이비드 니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해리슨 포드, 프랑코 네로 등이 추가로 투입됐지만 빈약한 스크립트에 엉성한 연기까지 리메이크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였다.
또 제임스 맨골드가 2007년에 리메이크한 서부극 ‘3:10 투 유마(3:10 to Yuma ; 유마행 3시10분 열차라는 뜻이다)'도 리메이크라는 말을 붙이기가 낯간지럽다. 이 영화에는 러셀 크로우와 크리스천 베일이 나온다. 둘 다 톱스타지만 크로우는 1957년도 원작 ’결단의 3시10분(영어 원제는 리메이크와 같지만 국내 개봉 당시 번역제목은 이랬다.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요즘 제목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에서 같은 역을 맡은 글렌 포드와, 또 베일은 밴 헤플린에 비하면 마치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지나친 혹평일지 몰라도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영화를 아동용 활극으로 개작한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런가 하면 제작비와 기술력은 크게 향상됐지만 질은 오히려 떨어진 리메이크도 있다. ‘혹성탈출(The Planet of Apes)'이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프랭클린 J 샤프너의 1968년 오리지널작은 의표를 찌르는 피에르 불의 원작소설과는 살짝 다르지만 영화 말미의 극적인 반전(反轉)장면을 포함해 SF영화의 걸작 고전으로 자리 잡은 데 반해 2001년 팀 버튼이 리메이크한 작품은 눈부신 컴퓨터 그래픽 등 월등한 기술을 포함해 제작비는 오리지널의 20배나 들였으면서도 팀 버튼다운 재기(才氣)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원작을 능가하는 리메이크 같지 않은 리메이크 작품도 있다. 그 중 하나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1985년작 서부극 ‘페일 라이더(Pale Rider)’다. 고전 서부극 ‘셰인’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그러나 얼른 봐서는 ‘셰인’의 리메이크 같지 않다. 전제적인 얼개는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이 사람인지 귀신인지조차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신비주의적 요소를 덧씌우면서 원작의 틀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도 원작 못지않은 시정과 정취를 자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여기서도 벌써 이스트우드의 거장다운 솜씨가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면 과찬일까.
소재의 고갈이라든지 원작의 아우라를 이용하려는 의도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리메이크 같지 않은 리메이크 영화가 봇물을 이루겠지만 원작을 능가하지는 못하더라도 원작에 누가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