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선 야당이 여당을 두둔하며 청와대를 몰아붙이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와 이후 불거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다. 당시 박 대통령이 읽어 내린 국무회의 원고를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도 추궁이 이어졌다. 원고엔 ‘구태 정치’ ‘끊임없는 당파 싸움’ ‘배신의 정치’ 등 국회를 겨냥한 거친 표현이 여럿 들어있었다.
◇靑, 劉 공격에 野 나서 “국회에 대한 도전”=야당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비판 발언을 문제 삼았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과 같은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사실을 부각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은 “지난달 25일은 대통령이 국회를 침공한 날”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신경질적으로 막말과 협박을 쏟아냈다” “용상에 앉아 대감들을 호통 치는 제왕을 연상케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논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초안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초안과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읽은 내용이 대동소이한가”라는 질문이 거듭되자 “100% 일치하지 않는 건 사실”이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이 원고를 직접 작성·수정했음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친박(친박근혜)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은 유 원내대표를 감싸고 여당은 입을 닫았다. 새정치연합은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를 무시하고 찍어내려고 하면 이는 국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가 국회를 무시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 비서실장은 그러면서도 “단초가 된 건 국회법”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만 통과됐더라면 여파가 없었겠지만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정부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국회로 돌려보내면서 문제가 확산됐다”고 주장했다. 당초 2일 열릴 예정이던 국회 운영위가 연기된 배경을 유 원내대표 흔들기와 연결시키는 시각에 대해선 “비약이다”라고 반박했다.
이 비서실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 업무보고 때마다 등장하는 대면보고 여부에 대해선 “언제든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면을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위급할 땐 오히려 전화나 팩스가 빠를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운영위 앞서 만난 李·金, “인사말 정도 했다”=이 비서실장은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잠시 만났다. 이 실장은 기자들에게 “인사말 정도 나눴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 사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대표해서 말할 것이 아니다”고 자리를 피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용상 앉아 대감들 호통치는 제왕 연상케했다” 강동원 의원
입력 2015-07-03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