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왕 공무원’ 수입차 인증 갑질에 EU까지 항의

입력 2015-06-30 17:40
국민일보 DB

수입자동차의 국내 출시 길목을 막고 일종의 통행료로 수천만원대 접대를 받은 말단 공무원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 공무원의 ‘갑질’ 때문에 정부는 유럽연합(EU) 측으로부터 공식 항의까지 받았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자동차 환경인증을 내주면서 업체에서 32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황모(4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0일 밝혔다. 황씨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자동차 배출가스·소음 인증을 담당하는 6급 연구직 공무원이다.

황씨는 2009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입차 업체 관계자 14명에게서 환경 인증검사 합격을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113차례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그의 안방 책상 서랍에서 410만원 현금다발을 발견했다.

자동차는 수입이든 국산이든 배출가스·소음 검사에 합격해 환경인증을 받아야 국내에서 팔 수 있다. 황씨는 자신과 친분을 쌓지 않은 업체에는 과도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일처리를 지연시켰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환경인증 민원의 절반가량이 1∼2개월 걸려 처리됐다. 원래는 신청을 받은 지 15일 안에 인증서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황씨는 외국 출장을 갈 때 인증을 신청한 업체의 직원을 대동했다. 지방 출장 때는 업체 측에 미리 일정을 알려 현지에서 접대토록 유도했다. 그는 한 유흥업소에서 같은 날 각각 다른 업체로부터 두 차례 접대를 받기도 했다. 친형이 갖고 싶어 하는 수입차 차종을 수시 검사 대상으로 지정해 인증 검사에 사용하게 한 뒤 정가보다 34%(약 1100만원) 싸게 산 정황도 포착됐다.

수입차 업체로부터 환경인증 관련 불만을 접수한 주한 EU대표부는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넘어선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식 항의문을 우리 환경부에 전달했다.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한 황씨는 수입차 업체 측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써서 제출하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오랫동안 뇌물을 수수하는 과정에서 상급자나 감독자로부터 아무 제재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