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미약했으나 끝은 아름답고 창대했다. 타고난 성실성과 노력으로 30여년 동안 미혼모를 돌봐온 그는 복지관 관계자와 미혼모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물러났다. 미혼모 돌보는 일을 반대하던 이들도 이임식장에 찾아와 그의 은퇴를 목도하며 눈물로 축하했다.
‘미혼모들의 대모’ 한상순(65) 애란원 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로 예능교회(조건회 목사)에서 애란원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정년퇴직한 한 원장은 1990년부터 미혼모 공동생활시설인 애란원을 이끌며 미혼모의 양육과 자립을 위해 힘써 왔다. 후임 원장엔 애란원에서 19년간 함께 일해 온 강영실 사무국장이 취임했다.
한 원장은 애란원에서 처음 일하던 시절에 만난 미혼모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성폭행을 당하고 윤락시설에 들어갔다가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고 도망쳐 나온 미혼모가 있었지요. 어느 날 갑자기 제게 호통을 치는 거예요. ‘10대 때 아이와 자신을 포기하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이런 기관을 미리 알았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기관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당신들 책임이다’라고요. 그 미혼모 이야기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죠.”
애란원에는 현재 아기와 미혼모를 합쳐 4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수개월마다 입소와 퇴소를 반복하곤 하지만 미혼모가 자립할 때까지 보살피고 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지원하는 미혼모와 아기가 연간 500~600명에 이른다.
그는 애란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세 가지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 ‘후원자’ ‘애란원 자매들’이다. 그는 “밤에 숙직을 하면서 미혼모들이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감당해야 할 가혹한 현실과 고통을 알게 됐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알게 됐다”고 간증했다.
애란원(옛 은혜원)은 미국 장로교 반애란 선교사가 가출소녀와 윤락여성의 선도·보호·자립을 목적으로 1960년 4월 설립했다. 77년 남편 반피득 목사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반 선교사는 83년 애란원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 기증했다. 55년 동안 애란 모자의집과 자립 홈 등을 운영하며 미혼모와 아기 등 6000여명의 자립을 도왔다.
애란원은 오는 9월 재건축을 시작한다. 건물 노후화로 유지보수비 부담이 크게 증가한 데다 대부분 아기들을 입양 보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적지 않은 엄마들이 직접 양육을 선택해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탁아방 등 더 많은 양육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 지원을 바탕으로 후원자의 성금을 받아 건축비용을 충당할 계획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다.
한 원장은 6·25전쟁 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무료 교육에 헌신한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 미혼모를 상담하는 입양기관에서 현장 실습한 것을 계기로 평생 미혼모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30여년 동안 미혼모 자립을 도운 공로로 그는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수여하는 ‘2014 가정의 달 기념 국민포장’을 받았다(02-393-4723·aeranwon.org).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미혼모 보호’ 외길 30년 한상순 애란원장 30일 아름다운 은퇴
입력 2015-06-30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