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로 그리스 경제가 마비된 가운데 5일로 예정된 그리스의 채권단 협상안 찬반 국민투표를 두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유럽연합(EU)이 노골적인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의 목표가 그리스 살리기보다 치프라스 정권의 퇴진에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의 협상안을 거부하는 것이 추후 협상에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며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을 국민들에게 강조했다고 영국 BBC방송 등이 30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만약 그리스 시민들이 영원히 긴축정책 속에서 살고 싶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면서 협상안이 받아들여지면 총리직에서 사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 클로도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국민투표 부결은 그리스가 유로존과 EU에서 거리를 두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그리스 국민들에게 채권단의 제안에 찬성할 것을 압박했다.
채권단이 구제금융 협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치프라스 정권의 퇴진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많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채권단은 그리스 현 정부가 협상안을 제대로 이행할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면서 이번 국민투표로 정권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치프라스 총리도 누차 “그리스의 개혁안을 재차 거부하는 것은 채권단이 원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해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채권단은 그리스 정부를 괴롭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과 배치되는 일을 받아들이도록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채권단이 그리스 정부에 요구하는 것을 가혹하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그리스 정부가 전날 공개한 투표용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반대(OXI)’가 위에, ‘찬성(NAI)’이 아래에 있어 일부 시민들은 정부가 반대를 유도하기 위해 ‘찬반’ 투표가 아닌 ‘반찬’ 투표를 실시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BBC는 “투표용지에 인쇄된 내용이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투표용지에는 “‘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협상안을 제시했다. 제안은 두 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첫 번째 문서는 ‘현재 프로그램과 그 이후의 완결을 위한 개혁’이며 두 번째 문서는 ‘예비부채지속성 분석’”이라고 쓰여있다.
현재로서는 국민투표로 인해 그렉시트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브느와 쾨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전날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 제코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지금까지는 이론적인 문제였지만 불행히도 더 이상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국민투표를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유로존 내에서 그리스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로 그리스 사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버티는 치프라스 “국민투표서 구제금융안 거부해야, 오늘이라도 연장 제안해오면 15억 유로 상환”
입력 2015-06-30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