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배신 완충지역 없는 박대통령

입력 2015-06-30 17:21
사진 연합뉴스 제공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과 함께 ‘배신의 정치’를 거론하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정면 비판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은 흔들릴 수 없다고 설명한다. 당청관계의 파탄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을 감수하더라도 박 대통령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현 상황에서 바뀐 것은 없고 앞으로도 바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청와대 기류를 전했다.

박 대통령은 유달리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왔다. 이번 사태 역시 이같은 박 대통령의 특유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원칙과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박 대통령은 5년 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10년 6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에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이를 국회에서 결국 부결시킨 것이다. 당시 국회 본회의에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찬성 105표, 반대 164표로 결론났고, 박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본격적인 대권 가도에 나서게 됐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도 유사한 점이 많다. 박 대통령은 위헌 소지 외에 이 법안이 당리당략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켰고 “국민을 위한 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정치공학적 계산 대신 박 대통령 자신의 원칙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 입장에 대해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다수인 것도 이 때문이다.

대외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른바 ‘신뢰외교(trustpolitik)’다. 최근 상황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만 오랜 경색국면을 이어갔던 한·일 관계나 현재 냉각기가 장기화되는 남북관계에서도 상호 신뢰에 기반한 정책 추진이 그 기반이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배신에 대해선 철저한 반감을 갖고 있다. 원칙과 배신 사이의 완충지역 또는 회색지대가 없는 셈이다. 여기엔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절감했던 경험이 배여 있다. 박 대통령은 1993년 펴낸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후략)”이라고 했고, 2007년 자서전에서도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고 했다.

이같은 원칙 속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이었던 인사들과도 때론 단호할 정도로 연을 끊었다. 박 대통령은 ‘친박 좌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갈라섰다. 김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백의종군한 뒤에야 관계 복원의 실마리를 풀게 됐다.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던 진영 의원 역시 박근혜정부 출범 뒤 복지공약 후퇴 논란 속에 복지부장관 직을 사퇴한 뒤 박 대통령과는 멀어졌고, 전여옥 전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이 과도한 이분법적 정치철학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