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내 '권력투쟁'의 핵으로 부상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문제는 당사자인 유 원내대표의 결단으로 공이 넘어갔다.
국회법 거부권 정국과 당·청 갈등, 당내 계파 갈등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29일 오후 새누리당 긴급 최고위원회는 유 원내대표에게 '고민의 시간'을 주는 것으로 그의 거취문제에 대한 결론을 유보했다.
이날 최고위는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첫 지도부 회의였다.
회의 결과는 당초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대해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애초 회의 소집 계획이 알려졌을 때부터 무 자르듯이 결론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했다.
서로 다른 계파와 이해관계로 얽힌 최고위원들이 향후 당 운영은 물론 내년 총선에 직접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이 문제에 대해 단박에 의견 일치를 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고위를 앞두고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며 총공세를 펼쳤고, 이에 맞서 숨죽이던 비박(박근혜)계 의원들도 개인 입장 발표나 성명 등을 통해 유 원내대표 사퇴 반대 입장을 천명하며 세 대결 조짐을 본격화하는 마당이었다.
최고위에서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유 원내대표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고, 또 다른 최고위원은 유 원내대표에게 고민의 시간을 주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는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당을 위해서 유 원내대표가 희생을 통한 결단을 부탁한다는 간곡한 이야기가 있었고, 또 몇 분은 그래도 시간을 좀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 대표의 발언을 해석하면 친박계는 사퇴를 촉구했고, 비박계는 즉각적인 사퇴보다는 '시한부 유임'에 무게를 둔 것처럼 해석된다.
발언의 강도나 사퇴 시기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 불가피론쪽으로 기울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본인도 종국적으로 그렇게 가야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전한 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데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사퇴를 촉구하는 친박 최고위원들이 '시간'을 양보하고, 유 원내대표에게 명예로운 출구를 위한 '명분'을 찾을 기회를 주자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김 대표는 회의에서 "당을 파국으로 가는 길은 막아야할 의무가 당대표인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의 불신임을 공개적으로 표시한 박근혜 대통령에 유 원내대표가 계속 맞서는 경우,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집단사퇴를 통한 당 지도부 와해의 경우, 의원총회 개최를 통한 친박계와 비박계의 정면충돌 사태 등 모두 '파국'과도 연결되는 시나리오이다.
김 대표의 말은 그러한 경우의 수, '파국'을 모두 피하기 위해서는 유 원내대표가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원내대표직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친박 최고위원들도 사퇴를 촉구했지만 최고위원 사퇴 카드를 휘두르지 않았다.
또 의총을 열어 유 원내대표의 사퇴 여부에 대한 전체 의원들의 의견을 물을지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퇴를 요구하는 친박계나 이에 반대하는 비박계 모두 의총을 여는 순간 세력 대결이 가시화되면서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된다. 자칫 어느 한 쪽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 원내대표 사퇴 총공세를 펼치던 친박계 의원들도 의원총회 소집요구를 일단 보류키로 했다.
파국만은 피하고 정치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때문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글로벌 경제 위기가 엄습하는 속에서 여권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싸늘한 마당에 집안 싸움을 벌이면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단 결론을 유보함으로써 시간을 벌고, 그동안 청와대의 반응과 여론의 변화를 살피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문제는 유 원내대표의 속내이다.
사퇴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출구를 찾는 수순을 생각하는지, 비박계의 사퇴 불가 여론을 등에 업고 버티는 방안까지도 열어두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유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가 끝난 후에도 "고민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 입을 닫았다.
유 원내대표로서는 자짓 지금 당장 사퇴한다면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대로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거나, 심한 경우 정치 생명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즉각 원내대표직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을 재상정한 뒤, 부결되거나 또는 본회의 성립 요건이 안돼 무산되는 순간 유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를 선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때는 등 떠밀려 나가는 게 아니라 애초 가결처리 됐던 국회법 개정안이 뒤집히는 것이어서 정치적 타격을 그나마 최소화하면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거취가 더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당과 국가, 정치 발전의 대의명분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사퇴쪽으로 입장을 번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이제는 유승민 본인 판단에 달렸다” ‘개인문제 넘어섰다?’ 대 시간 문제
입력 2015-06-29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