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으로 그리스 은행에 영업중단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다음달 5일 국제 채권단 협상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그리스의 운명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28일(현지시간) 은행 영업중단과 예금인출 제한 조치를 발표하면서 그리스 경제가 사실상 마비됐다. 은행 영업중단 조치는 국민투표 이후인 다음달 6일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자본 통제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한 일일 인출 가능 금액은 60유로(7만4000원)로 제한됐다. 영업중단 기간 그리스 내에서 인터넷뱅킹은 가능하지만 해외로 자금 이체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은행 현금인출 제한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영국 BBC방송은 “그리스 은행들이 지옥으로부터의 휴가를 얻었다”면서 “현금이 고갈돼가고 있는 은행들이 나중에라도 다시 문을 열기 위해서 자본통제 조치는 불가피했다”고 풀이했다.
30일 상환 예정인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15억 유로(약 1조8600억원)를 갚지 못하면 그리스는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수순을 밟게 된다. 공식적인 디폴트 상태가 되진 않더라도 채무상환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어서 디폴트로 향하는 급행열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다음달 5일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온다면 국민들이 치프라스 정부에게서 등을 돌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하는 과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강경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채권단과의 재협상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그렉시트까지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는 7~8월에도 유럽중앙은행(ECB)에 갚아야 하는 돈이 60억여 유로에 달한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채권단과의 재협상이 불발될 경우에는 채무를 연속 체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유로존 탈퇴가 오히려 그리스에 나은 선택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자신의 뉴욕타임스(NYT) 블로그를 통해 “그리스가 이미 자본 통제에 나섰기 때문에 유로존을 탈퇴하더라도 지금보다 사태가 크게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채권단이 지난 5년간 혹독한 긴축과 개혁을 그리스에 무기한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연합(EU) 측이 이날 그리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혀 극적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모든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그리스 디폴트 갈림길 ‘다음달 5일 국민투표가 분수령’
입력 2015-06-29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