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 윤성환 손민한 송신영’ 기교파 투수 전성시대…어떻길래 승승장구하나

입력 2015-06-29 10:42
프로야구에서 투수라고 하면 시속 150㎞ 이상의 공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 시즌 공의 속도는 떨어지지만 정확한 제구력으로 무장된 기교파 투수들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기교파 투수 전성시대=두산 베어스 왼손 유희관(29)은 다승과 평균자책점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오른손 에이스 윤성환(34)은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4년 80억원이라는 ‘잭팟’을 터트렸다. 손민한(40·NC 다이노스)과 송신영(38·넥센 히어로즈)의 경우 팀 내 최고령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칼날 제구로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희관은 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에선 신인을 스카우트할 때에도 공이 빠르면 앞 순번에 뽑힐 정도로 강속구 투수를 선호한다”면서 “이제 나 같은 기교파 투수도 인정을 받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교파 투수 공이 더 치기 어렵다”=통상적으로 공이 느리면 타자들이 더 쉽게 상대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타석에 들어서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강속구 투수의 경우 직구와 슬라이더 두 구종으로 타자를 승부하지만 기교파 투수의 경우 다양한 볼 배합으로 상대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 현재 국내 대표적인 강속구 투수인 김광현의 경우 시속 150㎞를 넘나드는 직구와 시속 140㎞언저리의 슬라이더 두 구종으로 상대를 윽박지른다. 반면 기교파 투수들은 상대의 노림수를 무력화하거나 공의 속도를 다양하게 해 타이밍을 뺏는 투구를 펼친다. 유희관은 직구 최고 구속이 시속 133㎞에 불과하다. 가끔 시속 97㎞ 커브인 ‘아리랑 볼’도 던진다. 던질 수 있는 구종도 많이 장착하고 있다. 손민한은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뿐 아니라 체인지업과 포크, 투심까지 적절하게 섞어 타자와 승부한다.

안경현 SBS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옛날 팔색조 변화구로 유명했던 조계선 선배의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로 몰리지 않고 양쪽 끝으로 다녔다”면서 “타석에 서면 오히려 기교파 투수들이 더욱 어렵다고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강속구 투수의 경우 빠른 공 하나만 생각하면 됐지만 변화구가 많은 투수의 경우 타석에서 무엇을 던질까 생각하다가 당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단점을 장점으로 변화시킨 기교파 투수들=기교파 투수들은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감내했다. 유희관은 “대학교 때 느린 구속 때문에 프로에 지명받지 못할까 봐 고민했었다”면서 “다행이 두산에 지명된 후 내가 가지고 있는 제구력과 경기운영 능력 등의 장점을 특화시키기로 생각하고 더 많이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기교파 투수들은 또 항상 상대 타자에 대한 연구를 꼼꼼히 하고, 포수와의 호흡을 중요시한다. 유희관은 “선발 경기 때 상대 타자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한다”면서 “여기에 경기에 들어가서 상대 타자들의 타석 위치와 노림 수 등 다양한 변수를 파악하고 포수와 상의해 볼 배합에 변화를 준다”고 말했다. 손민한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포수의 의견에 따른다”고 전했다.

투수 생명력도 기교파 투수가 더 강하다. 송진우 KBSN 해설위원은 강속구 투수에서 제구력에 바탕을 둔 기교파로 바꿔 43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통산 최다승(210승)과 최고령 선발승(42세) 기록은 모두 그가 가지고 있다. 송 위원은 “나이가 들면서 직구 스피드가 떨어지면서 위기감을 느끼자 나도 모르게 타이밍을 뺏는 구질로 바꿨다”면서 “나중에는 체인지업 활용을 많이 했고, 변화구 각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투수들이 구속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강속구를 버리고 제구력을 높이니 마운드에서 오히려 편안했다”며 “빠른 볼을 던질 때보다 장타를 맞을 가능성이 적었고, 타이밍을 뺏어 강타자를 속여 삼진을 유도할 때면 희열도 느꼈다”고 덧붙였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