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1분: 파라과이 네 번째 키커 로케 산타크루스의 실축
머리숱은 줄고 피부는 매끈하지 않지만 이목구비는 여전했다. 생기발랄했던 ‘꽃미남’은 이제 중후한 ‘꽃중년’으로 성장해 파라과이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었다. 로케 산타크루스(34·크루즈 아줄)가 축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산타크루스는 28일 칠레 콘셉시온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코파 아메리카 8강전에서 파라과이의 투톱 공격진의 왼쪽을 책임졌다. 정규시간 90분을 모두 뛰고 승부차기까지 자진해 파라과이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전성기 시절처럼 빛나지는 않았지만 강호 브라질 앞에서 파라과이 선수들을 노련하게 이끄는 베테랑으로 성장해 있었다.
산타크루스는 ‘골 넣는 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50)와 함께 2000년대 파라과이의 전성기를 견인했던 스트라이커다. 실력도 좋았지만 뚜렷한 이목구미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유럽에 데이비드 베컴(40·잉글랜드)이 있으면 남미에는 산타크루스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파라과이의 공격수로 출전했다. 파라과이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조별리그를 치른 B조 소속이었다. 산타크루즈는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파라과이는 스페인에 이어 B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지만 제주도에서 열린 독일과의 16강전에서 0대 1로 졌다.
13년 뒤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등장한 산타크루스는 패기보다는 여유로 가득했다. 승부차기의 선축을 결정할 때 브라질의 주장 주앙 미란다(31·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밝게 웃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얼굴이 굳은 미란다와 대조를 이뤘다.
산타크루즈는 파라과이의 네 번째 키커였다. 파라과이에서 유일하게 실축했다. 오른발로 때린 슛이 크로스바 위를 훌쩍 지나가 하늘로 솟구쳤다.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브라질 골키퍼 제페르송(32·보타보구)이 무안해질 정도였다. 산타크루즈는 고개를 숙이며 제 자리로 돌아가면서 한 차례 웃었다. 3대 2로 앞선 상황의 실축이어서 승리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실축 한 번에 좌절할 만큼 어린 선수가 아니었다. 두 팀의 다섯 번째 키커가 모두 골을 넣으면서 승부차기는 파라과이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은 “산타크루스를 보고 2000년대의 향수를 느꼈다. 여전히 멋있지만 세월을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머리카락이 과거보다 듬성듬성하고 피부도 거칠게 바뀌었지만 눈매와 콧날은 여전하다. 실축하고 웃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파라과이는 오는 1일 칠레 콘셉시온에서 아르헨티나와 4강전을 벌인다. 승리하면 칠레와 페루의 4강전 승자와 우승을 놓고 대결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결정적 1분] 머리 빠지고 피부 거칠어졌지만… “산타크루즈 오빠 웃을 때 심쿵”
입력 2015-06-28 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