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캡 1번홀과 18번홀에서의 ‘파’는 전혀 다르다” 윤병세 “외교 환경 구분 필요”

입력 2015-06-27 00:04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를 통해 "한일관계의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일지가 보다 분명히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날 한국국제정치학회가 전라남도 여수에서 연 학술대회 오찬 연설을 통해 "아베 총리의 (2차대전 종전) 70주년 담화가 앞으로 어떤 내용의 역사 인식을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줄이고자 아베 담화를 각의(국무회의) 결정 없이 총리 개인담화로 발표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고 최근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윤 장관은 아베 총리의 담화가 '형식'과 '내용'의 양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합해야 함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관계를 비롯해 한미·한중관계 등 우리 외교가 처한 상황과 과제를 폭넓게 짚은 이날 연설에서, 윤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아베 담화를 올 하반기 '동북아 기상도'에 영향을 줄 대표적 두 변수로 꼽았다.

그는 정부의 대일정책 기조와 관련해서는 "과거처럼 1보를 전진하고 2보를 후퇴하는 것보다, 천천히라도 꾸준히 가자는 생각으로 대일관계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회로 역사 문제에 기인한 여러 현안이 진전을 보아 선순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윤 장관은 우리 외교를 보는 시각과 관련해 "동북아나 세계에서 격랑이 치는 것은 하나의 여건이자 환경인데, 우리 외교 자체의 능력 문제로 동일시하려는 시각이 있다"고 진단했다.

골프 경기를 비유로 들어 "핸디캡 1번 홀에서 파(par)하는 것과 핸디캡 18번 홀에서 파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며 "외교 환경에 대한 구분 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윤 장관은 "우리가 강대국은 아니지만, 더는 강대국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종속변수도 아니다"라며 "주체의식을 갖고 외교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최근 미·일동맹의 질적 격상과 중·일의 접근 등을 계기로 일각에서 우리 외교의 '고립' 우려가 제기된 데 대한 반론으로 풀이된다.

그는 "외교를 특정 시점(stock)이 아닌 흐름(flow) 개념으로 보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그런 전략적 로드맵을 가지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 모두와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전략적 자산"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연설에서 윤 장관은 다음 달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리는 제3차 개발재원총회에 참석할 계획도 밝혔다.

유엔은 현행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이어받는 이른바 '포스트(Post) 2015' 개발 목표의 재원 마련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 달 중순 아디스아바바에서 제3차 개발재원총회를 열 계획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