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부에 계파 투쟁의 총성이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계파 충돌의 신호탄이 됐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야당과의 개정안 협상을 이끈 유승민 원내대표에 직격탄을 날렸다. 책임론까지 제기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비주류 성향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를 향한 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비판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원내대표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유승민 지키기’에 주력했다.
◇곤혹스런 여당 지도부=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에 보조를 맞췄다. 김무성 대표는 25일 “위헌성이 있다고 해서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나 같은 경우에는 과거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할 때 노동법 파동으로 책임진 일이 있다”고 말하며 우회적으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당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신의 파기’ 등의 극한 용어를 쓰며 겨냥한 인사들이 친박에서 비주류로 갈아탄 새누리당 의원들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의원은 “거부권 행사보다 여당을 향한 박 대통령의 비판이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
◇‘유승민 책임론’ 놓고 공방=친박 의원들이 선공을 가했다. 김현숙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적 요소로 계류돼 있었으나 법안 처리 직전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는 ‘아무 문제없이 통과될 법’이라고 보고해 법안 통과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며 “사실과 다른 정보를 의총에서 보고했던 유 원내대표의 정확한 해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흠 의원은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비롯해 지금까지 당내 의결조율 과정 미흡, 대야 협상능력 부재, 월권적 발언 등으로 당정청 공조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강석호 김성태 김학용 김세연 김영우 황영철 의원 등 비주류 성향의 재선 의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긴급 회동을 가졌다. 한 비주류 의원은 “대통령이 오히려 계파 갈등을 조장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이 직접 뽑은 원내대표가 싫다고 하면 그냥 나가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계파 갈등 불길 잡힐까…여권 헤게모니 재편 가능성=새누리당 지도부는 거부권 사태 파장의 진화에 주력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인한 국민적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이 권력다툼에 빠졌다’는 비판도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중재로 계파 갈등 불길이 잡힐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당내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졌던 친박들은 이번 거부권 파문을 통해 당내 역학 관계를 재편시키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반면 비주류 의원들은 한번 잡은 주도권을 친박에 다시 넘겨주지 않겠다는 태세다.
이번 계파갈등을 내년 4월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으로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싸움의 승자가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움켜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박이나 비주류 모두 더욱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여권 내부 권력투쟁 총성 울렸다
입력 2015-06-25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