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브레이크 잡힌 국회, 메르스 제외하고 올스톱

입력 2015-06-25 16:34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 의사일정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메르스 관련 법안만큼은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다른 모든 의사일정은 거부하기로 해 국회가 사실상 ‘올 스톱’될 공산이 크다. 여야 뿐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갈등도 최고조로 증폭되는 모양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법 개정안 재의 일정을 잡을 때까지 메르스 관련법을 제외한 모든 의사일정 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재의 일정 협의를 위해 여야 원내대표와 정의화 국회의장의 3자 회동을 요구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법의 단순한 재의가 아니라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을 원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박 대통령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문재인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박 대통령은 1998년 12월 현 국회법 개정안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사실을 망각했다”며 “그 때의 박근혜 의원과 지금의 대통령은 다른 사람인가”라고 비판했다. 앞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는 게 정치이지 이건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박 대통령은 메르스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지키라는 국민의 간절한 요구를 헌신짝처럼 내버렸다”며 “오직 정권 지키기에 골몰하면서, 그리고 배신의 정치, 배반의 정치 운운하면서 대통령 자신을 제외한 모든 정치인을 폄하하고 있다”고 했다. 또 오후 의총에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저보고 막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막말의 곱배기”라고도 했다.

새누리당은 재의결은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자동폐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김무성 대표를 포함해 재의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당내 다수다.

김 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발표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이 법이 위헌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통과시킬 수는 없는 문제 아니냐”면서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권은희 대변인도 “개정된 국회법이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우려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라며 “야당도 대승적으로 협조해 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결국 재의결을 요구하는 야당과 이를 막아서려는 여당 사이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여야 합의로 의원 211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청와대가 반대하자, 불과 며칠 만에 여야가 서로를 등을 돌리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6월 임시국회는 물론 앞으로 정치 일정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빠졌다. 정부·여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서비스산업발전법, 관광진흥법, 크라우드펀딩법 등은 당분간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갈등뿐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간의 갈등도 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논란이 정부의 권한인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하려다가 불붙었기 때문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재안까지 마련해 정부에 이송했지만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를 강한 어조로 비난해 체면을 구겼다.

입법부와 행정부간 힘겨루기가 연말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8월까지 정부 예산·결산이 예정돼 있고, 9월부터는 내년도 예산 심의를 위한 정기국회가 예정돼 있어서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