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 월든/켄 일구나스/문학동네
미국의 고전 ‘월든’은 시인이자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동부 메세츠세츠주 보스턴 인근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간 생활하며 쓴 수필집이다. 물질문명을 비판했던 소로는 이곳에서 영적 자아를 찾고 자연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추구했다. 시골 생활을 좋아하거나 농사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사회가 강요하는 삶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험’을 택했다.
150여년이 지난 2009년 미국 듀크대 대학원 인문교양프로그램에 입학한 켄 일구나스는 소로의 ‘월든’에서 배운 삶의 방식을 실천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낡은 봉고차를 구입해 거기서 남몰래 생활하며 빚 없이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하는 비밀스런 실험을 시작한다.
그가 이런 실험을 선택한 것은 대학 졸업 후의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주립대를 나온 그에겐 3만2000달러의 학자금 대출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문학 학사 학위(역사학과 영문학)만 남았다. 물론 남들처럼 졸업 즈음 열심히 구직 활동을 했지만 전문기술이 없었던 그는 수십 번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부모는 그가 제대로 된 직업을 얻길 바랐지만 학사 학위가 불필요한 자리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알래스카에서 여행가이드가 되는 길을 택한다. 겨울이면 지구상에서 손꼽힐 정도로 춥고 어두운 이곳에서 모텔 청소부 등 온갖 고생스런 일을 전전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모든 빚을 청산한 그는 앞으로 절대 빚을 지지 않되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한다. 비록 알래스카에서 무력함과 공허함을 맛봤지만 인생에는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자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로 ‘봉고차 월든’이 나온 배경이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그는 체육관에서 샤워를 하고 캠핑용 버너로 끼니를 해결했다. 봉고차에 쥐가 들어오는가 하면 식비를 아끼느라 늘 허기에 시달리고 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점차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재정적으로도 많은 돈을 아끼는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방학 때는 히치하이크로 북미 대륙을 횡단하고 18세기 뱃사람처럼 캐나다의 온타리오를 뗏목 항해로 가로지르는 여행도 했다.
봉고차족으로 살면서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충만하고 즐거운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배운다. 그래서 봉고차 생활에 대해 쓴 글로 유명세를 탄 뒤에는 잡지사의 기자 제안을 거절한다. 안정된 월급이나 의료보험 대신 자유로운 삶을 택한 것이다. 현재 그는 친구의 정원을 돌보거나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살고 있다.
빚더미를 헤치고 살아남기 위한 약 6년간의 좌충우돌 분투기를 담은 이 책은 타성에 젖은 게으름뱅이였던 ‘잉여 청춘’이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악전고투하면서 자기성찰의 능력과 양심을 갖춘 이 시대의 ‘시민’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재기 발랄한 에세이다. 아울러 장래희망이나 전공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학에 진학해 인문학을 경시하고 돈이 되는 학문만을 좇는 현실과 타성에 젖은 삶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서이다. 불황과 저성장의 시대에 태어난 한국 젊은이들에게 저자의 용감한 결정은 참고가 될 듯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book]빚지지 않는 충만한 삶을 위해 봉고차에 살으리랏다
입력 2015-06-25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