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에 대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47년간의 북한억류생활끝에 2000년 8월 고국에 돌아온 유영복(85) 귀환국군용사회장은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군포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다녔다고 토로했다. 귀환국군용사회가 만들어진 것도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들이 변절자나 북한이 좋아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군포로들은 1953년 정전협정체결시 다 돌아온 것 아니냐’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했다면 왜 빨리 돌아오지 않았냐?’는 등의 질문을 받으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대부분 탄광 등에 배치돼 철저하게 통제된 삶을 살아 도망할 기회를 갖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60세가 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내팽개치다시피 버려졌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6·25전쟁때 육군 제5사단 소총수로 복무했다. 그는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다. 그는 함경남도와 북도 경계선상에 있는 검덕광산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검덕광산은 북한 최대 광산으로 그곳의 삶은 처참했다. 지하 1000m 이상 내려 가야하는 열악한 막장은 악취와 먼지로 가득차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피부가 아린 날이 대부분이었고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사고도 자주 발생했다. 그는 “하루 하루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을 포함한 국군포로들은 조금만 버티면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고국이 자신들을 그래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10년, 20년 가겠느냐,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 또 지휘관들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겠는가.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찾으러 올 거라며 서로 위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유 회장이 탈출을 결심한 것은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뒤다. 그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다시 가졌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는 그해 7월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으로 넘어왔다.
경기도 이천에 자리 잡은 그는 “옥수수죽도 제대로 못 먹었었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지상낙원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목이 매인다. 그는 “6·25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국군포로들은 이제 고령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끝까지 그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국군포로 인터뷰]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
입력 2015-06-24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