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논란 1주일 만에 나온 해명… 인정? 부정? “참 모호하네”

입력 2015-06-23 22:22
국민일보 DB

소설가 신경숙씨가 결국 입을 열었다.

신씨는 23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본인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해명했다.

1주일 만에 나온 해명… 표절 인정인지 부인인지 모호해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씨에 의해 표절 의혹이 제기된 지 1주일 만이다. 그러나 신씨가 표절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부인한다는 것인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씨의 인터뷰는 ‘표절처럼 보일 수 있다’ ‘표절 의혹은 제기할 만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밝힌 “‘우국’을 읽어본 적도 없다”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진전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표절 여부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또 “‘우국’을 읽지 않았다”고 재차 주장했다. 다만 “읽어본 적도 없다”였던 최초 입장 표명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바꿈으로써 읽어본 적이 없다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신씨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 ‘엄마를 부탁해’ 등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표절 시비가 이는 것에 대해 “창작은 독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어떤 생각들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고 해명했다.

“어떤 소설을 읽다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와요.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을 때가 있어요.” “어떤 소설을 한 권 쓰면,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생각인가요?”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쓰면 어떻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내 글쓰기였어요” 등의 얘기도 덧붙였다. 비슷한 문장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표절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표절을 의도적으로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적 표절’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부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절 여부 여전히 논란…문학계 가이드라인 필요

신씨의 해명을 두고 “사실상 표절을 인정했다”는 해석과 “교묘하게 표절을 부인했다”는 해석이 맞서고 있다. 신씨의 작품을 표절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도 여전히 논란이다.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에서 문학평론가 이명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씨는 “신씨가 ‘표절이 맞다’, 이렇게 정확하게 확정하고 사과나 책임을 얘기했어야 되는데 그러지 않아서 아쉽다”면서 “한 단락 전체를 직접인용에 가깝게 가져다가 변용했고, 여러 곳에서 표절 혐의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신씨의 주장과 달리 의식적 표절에 해당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평론가 정은경(원광대 문창과 교수)씨는 “몇 가지 문장은 표절이다. 그러나 ‘전설’과 ‘우국’은 전혀 다른 작품이다”라고 평가했다. 정씨는 “‘우국’은 군국주의에 들린 탐미주의자 미시마의 무시무시한 소설이고 ‘전설’은 두 남녀의 말랑말랑한 이야기이며, 정문순씨가 지적한 ‘역순적 사건 구성’이라는 공통점도 ‘우국’은 역순이 맞지만 ‘전설’은 연대기 순이라는 점에서 사실도 다르다”면서 “표절이 아니라 모방이나 영향 관계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폈다.

조영선 변호사는 “표절의 잣대는 다양하고 문학적 잣대는 학술적 잣대나 법적 잣대와는 또 다르다”며 “문학인들이 주도해 표절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의 표절 범위는 창작의 자유와 모방의 자유를 좀더 넓게 허용하는 관행이 있다”며 “신씨의 작품에서 몇몇 문장의 유사성이 있지만 표절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엄정하게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5년 전에 제기된 문제, 왜 이제야 터졌나

신씨에 대한 표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평론가 오창은(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씨는 토론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박철화 정문순 이명원 김명인 등이 끊임없이 신씨의 표절 문제를 제기했지만 다 묻히고 말았다”면서 “왜 묻혔고, 왜 이제야 터졌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경숙 표절 사건은 한국문학의 존재조건을 바꿔 놓은 문학사적 사건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학에 작동하는 문학권력에 대한 중요한 문제제기의 촉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보선 시인은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속한 문학잡지에 속한 작가들의 상업성을 문학성으로 번역해 왔고, 출판사와 편집자들은 특정 작가를 가족처럼 돌보고 배려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표절을 표절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지난 15년간 문단 내부에서 제기됐으나 이번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의혹을 계속 외면하던 신씨가 처음으로 직접 해명과 사과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신씨 개인 문제를 넘어 문학권력, 창비의 상업화, 비평의 실종 등 한국문학 전체의 주제들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