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란 신경숙 모호한 해명… 15년 전과 너무 다른 전개

입력 2015-06-23 17:38

소설가 신경숙씨가 결국 입을 열었다.

신씨는 23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본인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1주일 만에 나온 해명… 표절 인정인지 부인인지 모호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씨에 의해 표절 의혹이 제기된 지 1주일 만이다. 그러나 신씨가 표절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부인한다는 것인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씨의 인터뷰는 ‘표절처럼 보일 수 있다’ ‘표절 의혹은 제기할 만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밝힌 “‘우국’을 읽어본 적도 없다”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진전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표절을 했다고 말하진 않았다. 또 “‘우국’을 읽지 않았다”고 재차 주장했다. 다만 최초 입장 표명에서는 “읽어본 적도 없다”였던 것이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부연함으로써 읽어본 적이 없다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신씨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 ‘엄마를 부탁해’ 등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표절 시비가 이는 것에 대해 “창작은 독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어떤 생각들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고 해명했다. “어떤 소설을 읽다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와요.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을 때가 있어요.” “어떤 소설을 한 권 쓰면,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생각인가요?”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쓰면 어떻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내 글쓰기였어요.” 등의 얘기도 덧붙였다. 비슷한 문장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표절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표절을 의도적으로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우국’을 읽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장담할 순 없다, 무의식중에 어디서 읽은 문장이 사용됐을 수도 있지만 표절을 의도하진 않았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사실상 표절을 인정했다”는 해석과 “교묘하게 표절을 부인했다”는 해석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문학의 소중한 자산을 이대로 죽여선 안 된다”는 논리와 “이번 기회에 한국문단의 적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

15년 전과는 너무 다른 전개… SNS, 문인들 가세

신씨의 표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문학평론가 정문순씨가 동일한 의혹을 제기했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묻힌 바 있다. 이번 사태 전개는 이례적일 정도로 뜨거웠고 신씨는 처음으로 직접 해명에 나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거론할 수 있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온라인 매체에서 시작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확산됐다. ‘땅콩회항’ 사건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SNS 시대에는 어떤 사건을 전문가나 언론의 담합으로 축소한다거나 감추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논란에 문단 내부인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것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씨의 의혹 제기가 나온 뒤, 문학평론가 권성우 오길영 이명원 등이 신씨를 비판하고 나섰고, 소설가 이순원씨도 의견을 냈다. 이외에도 여러 문단 인사들이 페이스북이나 언론 기고, 인터뷰 등을 통해 일제히 비판적 입장을 개진했다. 또 한국작가회의나 문화연대 등 문인 단체들도 토론회를 조직하는 등 집단적 움직임을 나타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씨의 표절 논란이 개인 문제를 넘어 문학권력 문제, 창비 문제, 한국문학 문제, 주례사 비평 문제 등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이들을 연료로 삼아 표절 논란은 더욱 가열됐다. 신씨의 표절 논란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한국문단 갱신의 중요한 주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해명 이후… 소설은 출고 정지, 집필 활동은 계속

신씨는 “출판사와 상의해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며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품 활동은 계속 할 생각이다. 신씨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라며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창비도 신씨의 ‘전설’이 실린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를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염종선 창비 편집이사는 “문제가 된 ‘전설’을 소설집에서 빼겠다는 신씨의 발언을 존중한다”며 “오늘부터 책 출고를 정지하고, 이미 유통된 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2005년 8월 출간됐으며 ‘전설’을 포함해 신씨의 중·단편 8편이 수록돼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