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에 관한 유명한 우화가 있다.
솔개는 무서운 맹금류에 해당된다. 매서운 발톱과 부리는 하늘을 나는 새 중 제왕의 자리를 다툴 만하다. 그의 수명은 최고 60~70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솔개의 나이 40세 쯤 되면 부리는 완전히 노쇠해 쪼그라들어 도저히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날카로운 발톱은 죽은 발톱이 되어 쓸모가 없어진다.
그 때 솔개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대로 있으면 먹이를 얻지 못해 죽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결심을 하는 솔개도 있다. 더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고 딱딱한 바위에 부리를 쪼아 낡아 못 쓰게 된 부리를 뽑아버리면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고 한다. 젊을 때의 날카로운 부리가 나와 그것으로 못 쓰게 된 자신의 죽은 발톱을 뽑아버리는 고통을 참고 노력해 새로운 발톱이 자라게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겪은 솔개는 다시 30년을 살아갈 육체를 얻고 다시 하늘의 왕자로 살아갈 수 있다.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는 노력이 솔개의 새로운 탄생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가능한 일은 아닐지라도 살기 위해 고통을 견뎌내는 솔개의 우화에는 배울 점이 있다.
오늘 어느 대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은 미국유학 후 40세가 됐을 때 박사 학위를 받고 15년째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때 배웠던 학문이 모두 바뀌었다고 한다. 새로운 학문의 세계가 다가왔는데 그것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어 잠시 쉬어 가려고 했단다.
하지만 학교의 강권 때문에 새롭게 공부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에 새로운 학문을 공부한다고 한다. 특히 IT 분야의 교수 한 명은 기술의 발달이 너무 빨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IT 실력이 자신보다 앞서가는 것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새롭게 공부하지 않으면 자신의 교수 자리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세상이 변하고 학문이 빨리 변해 40세가 넘으면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옛날 교수님들이 누런 노트 하나로 여유 있게 살던 때가 부럽다고 한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40세 이상부터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내가 배웠던 지식이 나중에 많이 변한 것을 발견한다고 한다. 법규도 빨리 바뀌고 규정도 빨리 바뀌어서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패러다임이 바뀐다. 세상이 급속히 변한다. 오늘 결혼식장에 갔는데, 결혼식이 왜 그토록 장난스럽게 변해 가는지 모르겠다. 경건하고 진지하게 진행됐던 결혼식이 이제는 무슨 이벤트처럼 변해가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지식은 바뀌고 경쟁은 더해가며 스트레스는 심해진다. 그리고 희망은 점점 줄어드는 세대가 되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한 뒤 10년 이상 써먹었던 지식은, 새롭게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우리를 옥죄고 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삶의 좌표를 잃어버릴 것이다.
새롭게 충전해 보자. 옛 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보자. 그래야 100세까지 살 수 있다. 우화 속 솔개와 같이 옛 것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가족의 앞길은 밝지 못하다. 지난 40년간 쉽게 살아 왔다면 이제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한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목사님께 순종하고, 헌금 잘 내고, 어려울 때 기도하고, “아멘”만 외치던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 한 번쯤 자신의 종교생활도 뒤돌아보자.
헌금만 많이 내면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실 거라 생각했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과 나 사이 진정 올바른 관계 설정인가 생각해 보자.
주일예배만 드리면 천국 가는 데에 아무 걱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다시 생각해 보자. 이제 좀 더 높은 신앙생활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성경을 읽자.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지혜가 있고 생활의 정체성도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성경을 깊이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솔개처럼 고통과 노력을 통해 성경 속 하나님을 다시 뵙고 그 뜻을 헤아려 보자.
나는 요즘 성경을 무척 많이 읽고 또 읽지만, 매일 볼수록 모르는 것이 아직 많다고 느낀다. 매일 새롭고 새롭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다.
이제 새로운 신앙의 단계로 가고픈 욕망이 앞선다. 약한 나의 지식과 믿음을 새롭게 단련해 앞으로 다가올 100세 시대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
결국 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 올리고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사회생활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지 나 자신을 탓해 본다.
앞으로는 새로운 부리로, 새로운 발톱으로 십자가 군병이 되어 가는 나 자신을 기대해 본다. 내 힘이 모자랄 때 성령 하나님께 도우심을 기도해 보자.
<한국유나이티드문화재단 이사장·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장로 칼럼- 종교인과 신앙인(120)] 솔개 이야기
입력 2015-06-22 14:44 수정 2015-06-23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