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25.할리우드로 간 아시아 배우들

입력 2015-06-22 17:50
미국 LA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주라기 월드’ 시사회에서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감독 콜린 트레보로우(왼쪽부터)가 삼성전자 SUHD TV 디스플레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메르스 공포에도 아랑곳없이 흥행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주라기 월드’가 한국 최대 전자업체의 브랜드로 뒤덮여 있다고 한다. S전자가 제작사인 유니버설 픽처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마케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어벤저스 2’에는 서울이 배경으로 촬영된 부분이 비교적 길게 담겨있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의 문물이 할리우드에 넘실대고 있는데 비해 배우들의 활약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이병헌과 비가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역시나 무술을 앞세운 전형적인 활극인형 같은 인물상에 그칠 뿐 정극의 주연급이나 로맨스의 주체가 되는 역할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다. 하기는 한국 배우만이 아니다. 아시아계 배우들은 거의 전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찬밥 신세다. 대개 주인공의 보조 역할인 이른바 sidekick이나 기껏해야 악역, 아니면 하인 같은 있으나마나 한 역할이나 하잘 것 없는 코믹한 양념 역할 정도가 고작이다. 일찍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던 한국계 배우 필립 안(도산 안창호선생의 아들)이 대표적인 예다. 요즘에는 어쩌다 아시아계가 주연급을 맡는다고 해봐야 대사 몇 마디 없이 손 발 휘두르는 무술솜씨나 뽐내기 일쑤다. 같은 소수인종이라도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제이미 폭스 같은 흑인배우들이 크게 ‘신분 상승’해 할리우드에서 한 자리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물론 아시아계 배우들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지긴 했다. 과거에는 아예 백인 배우들이 동양인을 연기했다. 눈꼬리를 치켜올리거나 뻐드렁니를 붙이는 등의 분장을 하고, 이를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또는 레이스벤딩(racebending)이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형적인 양키 존 웨인이 1956년에 ‘정복자(The Conqueror)’에서 징기스칸을 연기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영화사가들로부터도 ‘사상 최악의 미스캐스팅’으로 지적된다. 하긴 징키스칸은 웨인 외에 이집트 배우 오마 샤리프도 연기했다(1965 ‘징기스칸’). 이 영화에서는 또 영국 배우 제임스 메이슨이 중국 관리로 나왔다. 상상이 되는가. 우아한 영국 신사 제임스 메이슨이 눈 꼬리를 치켜 올리고 가느다란 수염을 길게 붙인 채 중국인으로 분장한 모습이. 그 못지않게 기이한 경우가 또 있었다. 허여멀쑥한 백인 미남의 대명사격인 록 허드슨이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출연한 것.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의 1950년 작 서부극 ‘윈체스터 73’에서다. 찰스 브론슨이나 앤소니 퀸이 인디언이라면 그런대로 그러려니 하겠지만 아무리 당시 허드슨이 신출내기 병아리 배우였다 해도 붉은 피부의 인디언 전사라니 그것 참.

뿐인가. 누가 봐도 유럽 귀족의 분위기를 풍기는 크리스토퍼 리는 1960년대에 동양인 악당 푸만추로 명성을 떨쳤고, 1930년대에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활약한 일본인 탐정 ‘미스터 모토’를 악역으로 유명한 백인 배우 피터 로레가 맡았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다. 2012년에 워쇼스키 남매가 만든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잘생긴 백인청년 짐 스터제스와 ‘매트릭스’의 미스터 스미스 휴고 위빙이 희한한 분장을 하고 한국인 행세를 한다.



그나마 이런 억지가 조금이나마 개선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이소룡에서 성룡으로 이어진 홍콩 무술배우들 덕분이다. 하지만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아시아계 배우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기껏해야 활극배우’라는 덫에 걸려버렸다. 그 유명한 이소룡도 오직 근육 자랑하는 무술 배우에 그쳤을 뿐 러브 라인의 주인공이나 섹스어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전형적인 중국인과는 다른 생김새가 말해주듯 어머니가 독일 혼혈이어서 피의 4분의 1은 서양인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루돌프 발렌티노보다 앞선 할리우드 최초의 남성 섹스 심볼은 동양인이었다. 일본인 하야카와 셋슈(早川雪舟 1889~1973). 나중에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군 포로수용소장 사이토 대좌로 나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알렉 기네스와 팽팽한 연기대결을 펼쳤던 바로 그 배우다. 그는 미국 시카고대학에 유학 중 일찍이 영화 초창기인 1910년대에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그는 잘 생긴 얼굴과 이국적인 매력에 넘치는 섹스어필로 즉각 여성 관객들에게 우상이자 할리우드 최초의 남성 섹스 심볼로 군림했다. 발렌티노보다 훨씬 앞서서였다. 실제로 그는 발렌티노의 출세작이었던 ‘족장(Shiek)’의 타이틀 롤 출연을 먼저 제의받았으나 이를 거절, 발렌티노가 이어받음으로써 새로운 섹스 심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하야카와의 인기에 필적할 수 있었던 배우는 코미디의 제왕 찰리 채플린과 활극의 왕자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그리고 최초의 서부극 스타인 윌리엄 S 하트 정도였다.

하지만 1910~20년대 무성영화 시기를 주름잡았던 하야카와도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인종 간 사랑을 금기시한 반잡혼법(反雜婚法 anti-miscegenation laws)의 영향과 서서히 심화돼간 반일본인 정서와 함께 쇠퇴기를 맞았다. 이후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명예로운 악당(honorable villain)’ 역할이나 간간이 맡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지명을 받았던 사이토 대좌역이었다.



그 같은 하야카와도 이제는 그런 배우가 있었나 할 만큼 완전히 잊혀졌다.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인지 일본인 배우들은 여타 아시아계와는 달리 할리우드에서 나름대로 대접을 받았다. 이를테면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할리우드에서 그나마 주연급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맡았던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 그는 명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페르소나로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을 통해 할리우드에 얼굴과 이름을 알린 뒤 할리우드에서 ‘괜찮은 동양인’ 역을 거의 도맡다시피 하면서 백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를테면 한국에도 개봉된 영화 ‘레드선’(1971)에서는 당시 인기절정을 달리던 찰스 브론슨, 알랭 들롱과 공연했는데 그는 두 사람을 압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미후네 이후로는 다카쿠라 켄(高倉健)과 와타나베 켄(渡邊謙)이 그 뒤를 이어 비중 있는 동양계 배우로 활약했거나 활약 중이다.

그러나 이런 일본인 배우들을 제외하면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할리우드에서 별 볼 일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앞으로는 아시아 배우들이 적어도 흑인배우들 수준으로 할리우드에서 위치가 확립되기를, 나아가 제2, 제3의 하야카와 셋슈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