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방식은 작품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문화역서울284의 이번 전시는 ‘디스플레이의 힘’이 한껏 발휘됐다. 신수진(47) 예술 감독의 3월 취임 후 첫 전시로, 구석구석 디테일이 살아있다. 주명덕 작가의 ‘산 사진’을 진열한 첫 전시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산의 형태를 단순화시킨 회색톤의 가벽은 중첩된 산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죽어있던 공간도 전시 공간으로 끌어냈다. 천장이 낮은 지하 계단 위에는 함진 작가의 설치 작품 ‘도시 이야기’를 걸었다. 일부러 조명을 설치하지 않아 작품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한다. 자연채광이 작품을 방해할 수 있는 공간에는 창에 필름을 붙여 조도를 낮춤으로써 바깥 풍경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빛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는 효과도 거둔다.
옛 서울역사의 흔적도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신 감독은 “나이 지긋하신 분이 전시도 없는데 오셨다. 전시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서울역이 보고 싶어 왔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역의 장소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2층 전시실 천장으로 이어지는 흰 벽에 투사시킨 프랑스 사진가 로망 알래리의 영상 작품에는 이 건축물과 호흡해 온 샹들리에가 그대로 그림자처럼 비친다. 조덕현의 설치 ‘모성’을 화장실 옆에 배치한 게 압권이다. 중세성당의 ‘성모상’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누구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디스플레이 힘
입력 2015-06-21 1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