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너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입력 2015-06-20 11:36
“너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미국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 난사 사건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참혹한 증오 범죄에 증오로 대응하지 않았다. 힘겨운 고통 속에서도 용서의 말을 건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 법원에서 총기 난사 사건 피의자 딜런 루프(21)의 보석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약식재판이 열렸다. 지난 17일 찰스턴 시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권총을 난사해 신도 9명을 숨지게 한 루프는 노스찰스턴 카운티 구치소에 감금된 채 화상으로 재판을 받았다. 유족들은 가해자에게 직접 얘기할 시간을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관례에 따라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서서 루프에게 말을 건넸다.

희생자 미라 톰슨의 가족인 앤서니 톰슨은 “나는 너를 용서하고 우리 가족도 너를 용서한다”며 “네가 우리의 용서를 참회의 기회로 삼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총격 현장에 있었던 펠리시아 샌더스는 당시 죽은 척을 해서 총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함께 있던 아들은 총탄에 맞아 숨졌다. 샌더스는 루프에게 “우리는 두 팔 벌려 너를 성경모임에 받아줬지만 너는 내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였다”면서 “내 몸의 살점 하나하나가 모두 아프고 난 예전처럼 살아가지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침묵하던 루프는 이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루프의 총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에설 랜스는 “너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며 “엄마를 다시 안을 수 없고 함께 얘기를 할 수도 없으며 많은 이들이 너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너를 용서할 것이고 나도 너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앨라나 시먼스도 “할아버지(대니얼 시먼스 목사)와 다른 희생자들이 증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지만 모두가 네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울면서 “이는 우리가 사랑으로 살아왔고 이번 사건도 사랑을 유산으로 남길 것이며. 증오는 결코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외쳤다.

루프의 가족은 변호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사태가 충격적이고 슬프고 믿기지 않는다”며 사죄하는 마음을 유족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범행 동기와 같은 구체적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유족들이 루프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언급하면서 “끔찍한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품위와 선량함이 빛난다”고 찬사를 보냈다. 조지프 라일리 찰스턴 시장도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미친 생각을 품고 찾아왔지만 이 공동체는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 제임스 고스넬 판사는 루프의 무기소지 혐의에 대해선 100만 달러에 보석을 허가했지만 살인 혐의에 대한 보석 여부는 다시 다루기로 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