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도 갔는데 메르스 쯤이야” 철통방어 명받았습니다… 군의관 김민영

입력 2015-06-19 22:46

“고생 많다”는 인사에 김민영(33) 소령은 “아니다. 항상 준비하고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국군의학연구소 특수환경연구센터 감염병연구과장인 김 소령은 지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군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나 밀접 접촉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으로 가서 역학조사와 조치를 하는 게 주요 임무다. 환자가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만한 사람은 누군지 등을 추적해 확산 경로를 차단한다.

역학조사부터 식사 배달까지

17일 오후 대전 국군의학연구소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목소리가 다소 가냘프고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앞서 상상한 영관급 장교의 선 굵은 음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는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전화기 볼륨 단추를 여러 번 눌렀다. 김 소령은 상대를 살피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런 사람은 대개 신중하고 꼼꼼해서 분석하는 일에 강하다. 그는 한 해 배출되는 의사 3000명 중 20명이 안 되는 예방의학전문의다.

김 소령은 지난 1일부터 약 2주간 메르스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국군대전병원에서 진료체계 전반을 검토하고 새로운 체계를 잡는 임무를 맡았다. 방호복은 보통 한 번에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입는데 이보다 길어질 때가 잦았다. 주어진 업무를 마치면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병동 일을 거들었다.

“병동에는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식사시간엔 격리자들이 나올 수 없으니까 지하식당에서 도시락처럼 배달이 와요. 그러면 우리가 방마다 문을 두드려서 식사를 넣어줘요. 그리고 물이나 휴지 같은 생필품도 부족해지면 계속 넣어줘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방호복 입고 들어오라고 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들어와 있을 때 다같이 도와주는 거예요.”

방호복은 두껍고 통풍이 잘 되지 않아 한 번 입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방역 마스크와 고글(보호안경)을 착용하기 때문에 숨쉬는 것부터 간단치 않다. 최근에는 에어컨 필터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환경에서 김 소령을 비롯한 중앙역학조사반은 하루 4, 5시간씩 방호복을 입고 근무했다. 김 소령은 “병동 근무자들은 거의 2교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2시간 일하고 2시간 쉬는 식으로 해도 최소 6시간은 방호복을 입고 일할 것”이라고 했다. 한 번 입은 방호복은 폐기한다.

메르스와 에볼라

메르스 파견은 김 소령이 자원한 일이다. 군대라고 모든 업무를 강제로 떠맡기는 게 아니다. 위험한 일은 자원을 받는다. 메르스 파견 지시가 떨어졌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이 만류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내가 훨씬 더 위험한 에볼라 파견도 가라고 했는데 새삼 이걸 가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아내는 그런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야 하는 거면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임신 8개월째다. 2009년 결혼한 이들 부부에게는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다.

김 소령은 올해 1~2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긴급구호대로 활동했다. 영국에서 일주일간 교육을 마치고 1월 17일 현장인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 무더운 나라에서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보는 일은 힘들었다. 매일 5~6시간이 기본이었다. 환자가 급증하면 8~9시간을 입고 있었다. 장갑을 벗으면 물이 쏟아졌다. 손은 목욕탕에서 나온 것처럼 쭈글쭈글했다. 탈수가 심했다. 김 소령은 이때도 자원해서 갔다.

“시에라리온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신종 감염병은 한국이든 어디든 계속 생길 거라고 학자들이 예측하는데 거기에 대한 경험을 해야겠다 싶었고요. 필요한 건 확실한데 가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가야겠다, 그래서 지원을 했죠.”

이 경험이 메르스 업무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메르스는 에볼라보다 치사율이 낮고, 지금 방호복은 에볼라 때보다 가볍고 덜 덥다. 의료진에게는 감염에 대한 두려움보다 방호복의 부담이 크다고 한다. 방호복은 벗을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오염된 외피에 피부가 닿거나 해서 감염될 우려가 있다. 시에라리온에서 김 소령과 함께 활동하던 외국 의료진 중에 그런 경우가 있었다. 김 소령은 “에볼라 때 방호복을 많이 입어본 만큼 많이 벗어봤다. 이 덕에 메르스 업무를 하면서도 벗는 과정에서 오염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확실히 적다”고 했다.

밥 먹다 나가는 남편

김 소령은 군의학연구소로 돌아와서도 메르스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나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동해야 한다. 몇 번은 집에서 가족과 밥을 먹다가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나가면 만삭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잠든 뒤에야 돌아온다. 그는 지난 1월 에볼라 구호활동을 하러 한국을 떠나서야 아내의 임신을 알았었다. 귀국해서도 감염 우려 때문에 3월 중순까지 3주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김 소령은 “그땐 임신을 미리 알았다면 (한국을)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때문에 가족에게 너무 짐을 지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아내는 간호사다. 두 사람은 대학생 때 중국 옌볜에 의료봉사를 가서 처음 만났다.

김 소령은 최근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목이 부으면서 열이 났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감기약을 들려 보낼 텐데 어린이집에서 부담스러워할까 봐 못 보냈다고 한다. 부모가 의사와 간호사인 사실을 아는 어린이집 측에서 메르스 사태 이후 신경을 쓰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김 소령은 “남의 자식이면 ‘메르스와 무관하니 어린이집에 가도 괜찮다’고 할 텐데 내 자식이니까 ‘괜찮으니 받아 달라’고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방심하면 끝나지 않는다

김 소령은 스스로 놀랄 만큼 잘 나온 대입 성적 덕에 의대를 갔다고 한다. 그전에는 한 번도 의대에 갈 만한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원래 의사가 될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를 해서 뭘 누리겠다는 생각이 적다. 내게 의사라는 직업은 (성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라고 했다. 그가 중요하지만 어렵고 돈도 안 된다는 예방의학을 선택할 때 크게 고민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의관으로 임관한 지 4개월 만인 2011년 8월에는 한국 미국 캐나다 호주가 합동으로 실시하는 훈련에 자원해 몽골에서 도시빈민을 진료했다.

그는 메르스 사태가 개인위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감염병은 완전히 사그라질 것 같다가도 방심하면 다시 유행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돈 많은 사우디아라비아도 1년 넘게 메르스를 못 잡고 있다. 김 소령은 “의료인과 방역 당국만 노력한다고 될 게 아니다. 국민 전체가 개인위생을 잘 준수하고, 격리 조치나 조사에 잘 협조해주셔야 메르스가 종식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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