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민 한국정부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소송 가능

입력 2015-06-18 17:59

일본인이 한국 정부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면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일본과 한국의 ‘상호주의’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975년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 등으로 불법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했던 허모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난 허씨는 73년 서울대 의대로 유학을 왔다. 중앙정보부는 75년 간첩 혐의를 씌워 허씨를 영장 없이 체포한 뒤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

허씨는 1·2심에서 징역 3년6개월에 자격정지 3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79년 허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허씨는 2006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허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허씨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 국가배상법 7조는 외국인의 국가배상청구권 발생 요건으로 해당 국가와의 상호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상대국에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면 상대국 국민도 우리 정부에 국가배상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국가배상 청구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 국가배상법에서 정한 상호보증이 존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때 상호보증은 반드시 해당 국가와 조약이 체결돼 있을 필요는 없고, 판례·관례로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기준을 설명했다. 실제 일본 사법부는 일제 강제징용 및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피해에 대한 한국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등 여러 판례에서 일본과 한국 사이의 상호보증이 성립돼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앞서 1·2심 재판부도 국가배상법에 따른 상호보증을 인정했다. 또 “허씨가 국가의 불법행위 당시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가배상청구권을 갖고 있었고 국적을 상실했다고 해서 그 권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국가는 허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