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더해가는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이 냉전시기에 버금가는 무기 경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는 대규모 중화기를 배치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배치 계획을 밝힌 데 대해 ‘무력위협’이라며 핵 위협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옌스 슈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의 계획은 파괴적이고 위험하다”면서 “이런 상황이 우리가 군사적인 준비와 대응 태세를 증강하는 하나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역시 러시아의 핵 미사일 추가 배치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합의했지만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 누구도 우리가 과거로 회귀하거나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쿠빈카에서 열린 국제군사기술포럼 ‘군-2015’ 개막식에서 “올해 40기의 ICBM을 추가로 배치할 것”이라며 “이 신형 미사일은 가장 진보된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도 막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사울리 니니스토 핀란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누군가 우리 국경에 위협을 가한다면 우리는 최신 타격력을 지닌 우리 정부군을 통해 이를 무력화할 것"이라고 말해 서방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번 발표는 앞서 서방이 발트해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이는 동시에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대규모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힌 데 뒤이은 것이어서 양측이 번갈아가며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트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펼치고 있는 나토는 올 가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2만명 이상의 병력이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전날 유럽에 제5세대 첨단 전투기 F-22 랩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고, 13일에는 옛 소련권 국가들인 발트해 연안 3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에 3000∼5000명 규모의 여단급 병력용 탱크와 보병전투차량 등 중화기를 배치할 계획을 수립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청년세대에 군사적 애국심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2017년 개장을 앞두고 있는 ‘군사 디즈니랜드'로 불리는 애국공원을 공개했다. 국방예산 200억 루블(약 4100억원)을 쏟아부은 애국공원에서는 탱크를 타고 총을 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푸틴 대통령과 스탈린 등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이 판매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한편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일본은 17일 지난해보다 2배 늘린 미군의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를 다음달 초부터 아오모리현 미사와 비행장에 일시적으로 배치한다고 밝혔다. 미사와 비행장은 괌 기지보다 북한이나 중국과 더 가까워 양측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속내가 담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와 가까운 동중국해 연안에 대규모 기지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무인기를 투입해 주변을 정기적으로 감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신냉전 미·러, 유럽서 군사경쟁
입력 2015-06-17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