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벽돌 맞고 쓰러졌다… 서울 개봉동 퍽치기 미스터리

입력 2015-06-17 18:01 수정 2015-06-18 10:32

지난 3월 31일, 비 오는 화요일이었다. 여고생 김모(16)양은 우산을 쓴 채 서울 구로구 개봉2동의 한 아파트 앞 골목을 혼자 지나고 있었다. 지하철 1호선 개봉역에서 도보로 3분쯤 걸리는 곳이다. 오후 6시30분쯤인데 비 때문인지 이미 사방은 어두컴컴했다.

김양이 1호선 철길과 아파트 사이 진입로를 70m쯤 걸었을 때 갑자기 뒤에서 검은색 후드를 쓴 남성이 다가왔다. 4~5m 뒤까지 쫓아간 남성은 김양의 뒤통수를 향해 회색 물체를 던졌다. 주변 공사장에서 나온 시멘트 덩어리였다. 김양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머리가 5㎝가량 찢어졌다. 남성은 개봉역 쪽으로 30m쯤 달려간 뒤 방향을 틀어 남부순환로 쪽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돈을 빼앗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다. 자칫 어린 여학생이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남성은 당시 우산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노출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저녁시간대라 행인도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은 우선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한 택시 1000여대를 조사했다. 택시를 타고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 시간대에 개봉역 일대에서 비슷한 남성을 태운 택시는 없었다. 당시 운행 중이던 버스 10여대의 운전기사를 조사했다. 개봉역 광장 근처의 상인과 행인을 상대로 탐문했다. 폭력·폭행으로 상해를 입힌 적이 있는 동종 전과자도 조회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사건 발생 직후 구로경찰서 강력계 전체가 수사하던 이 사건을 현재는 한 팀이 맡고 있다. 상해 혐의가 적용되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그 안에 잡힐지는 미지수다. 구로경찰서는 이 사건을 ‘묻지마 폭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양의 우산 끝 부분이 우연히 괴한의 머리에 닿았거나 해서 기분이 나빠진 괴한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 아니냐는 가설도 두고 있다”며 “그만큼 증거가 없다”고 했다.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은 범행 현장 부근에 CCTV만 충분히 있었어도 쉽게 해결됐을지 모른다. 김양이 걷던 골목에는 모두 5곳에 CCTV 7대가 설치돼 있다. 구로구에서 운영하는 CCTV가 4대, 근처 아파트 CCTV가 3대다.

개봉역 1번 출구 앞의 구로구 CCTV는 범행 현장과 너무 떨어져 있어 범인이 찍히지 않았다. 현장에서 60~70m 떨어진 곳의 CCTV(구로구 운영) 3대 가운데 회전형(200만 화소) 1대와 고정형 1대(130만 화소)는 개봉역 방향을 향하고 있다. 나머지 고정형 1대만 범행 현장 쪽을 찍고 있었다. 화질이 나빠 범인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다. 구로경찰서 관계자는 “초당 프레임 수가 적어 사람이 걸어가면 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이 찍히는 게 아니라 툭툭 끊겨 나온다”며 “왼발 오른발 걷는 게 아니라 왼발로만 걷는 것처럼 나온다”고 했다.

흐릿하게나마 범인을 찍은 것은 인근 아파트에서 자체 설치한 CCTV였다. 김양을 뒤쫓아 와서는 무언가 던지고 도망가는 장면이 담겼다. 다만 화질이 좋지 않아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 남부순환로 방향의 큰길에는 CCTV가 아예 없다. 현장 바로 앞의 아파트 CCTV는 어두운 골목이 아니라 개봉역 쪽을 보고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같은 사건이 서울 강남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이번 범행 현장과 비슷한 길이의 골목을 끼고 있는 강남구 청담동의 한 아파트에는 400m 반경 내 24곳에 CCTV가 설치돼 있다. 모두 강남구가 설치·운영하는 것이다. 구로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현장뿐 아니라 구로구 전체를 봐도 CCTV가 부족하고 성능도 떨어진다. 구로역 광장에 서있어도 비추는 카메라가 없을 지경이다. CCTV를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CCTV는 대수나 성능에 차이가 많다. 구로구가 운영하는 CCTV는 1633대, 강남구는 2161대다. 성능이 좋은 회전형의 경우 구로구는 727대, 강남구는 1357대를 갖고 있다. 구로구가 올해 새로 CCTV를 설치하기 위해 책정한 예산은 8억7900만원(72대)으로 강남구(23억6850만원·117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다 아파트나 대형건물 등에서 자체적으로 설치한 CCTV를 고려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범행 현장 부근 주민 이모(59·여)씨는 “2~3년 전 CCTV를 늘려달라고 민원을 넣었는데 잘 안 된다. 불안하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얼마 전에 도둑이 들었는데 CCTV가 흐릿해 잡지 못했다”며 “더 많은 CCTV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빈부 차이가 지역 치안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박세환 고승혁 김판 기자,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