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 초읽기, 여론 따라 성패 갈려 명분 싸움 본격화될 듯

입력 2015-06-17 17:02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 의사를 강하게 시사하면서 사실상 ‘거부권 정국’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거부권 행사의 성패가 여론 향배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아 찬반 양측간 ‘명분 싸움’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제헌 국회 이후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모두 64차례에 달한다. 양원제 국회였던 5대 국회 때 참의원이 재의결을 요구한 8건은 제외됐다. 이중 국회가 재의결해 원안을 통과시킨 사례가 31차례로 성공률이 48.4%다. 여기에 대통령이 거부를 스스로 철회해 결국 국회 뜻이 관철된 경우(3대·6대 국회 각 한 건)까지 포함하면 절반(51.5%)을 조금 넘는다. 통계상으로만 보면 대통령과 국회의 힘겨루기는 비등했던 셈이다.

그러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결과는 다르다. 재의결 사례 31건 중 30건이 대통령과 국회와의 갈등이 많았던 1~2대 국회 때의 일이다. 1공화국 이후 재의결로 통과된 법안은 16대 국회 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이광재·양길승 관련 권력형 비리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한 건이 유일하다.

당시 국회는 2003년 11월 10일 본회의를 열어 재석 192명 중 찬성 183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소속의원 전원이 퇴장해 표결에 불참했다. 법안은 이튿날 곧바로 정부에 이송됐고 노 전 대통령은 2주 후인 25일 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법안은 재석 266인 중 209인의 찬성으로 재의결됐다. 집권세력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했던 이유도 컸지만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특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60%를 웃돌았던 게 주요했다는 분석이다.

가장 최근 사례인 이명박정부 당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명 택시법에서도 여론이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택시법은 2013년 1월 국회 본회의 통과 때 재적 255인 중 찬성 222인의 압도적 표차이로 통과됐다.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여야 모두 “국회를 무시한 행동”이라며 발끈했지만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볼 수 없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어서 국회 스스로 재의를 포기했다. 국회법 개정안 역시 결국 박 대통령이 얼마나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5일 발표한 국회법 개정안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찬반이 각각 30%, 32%로 비슷했다. 오히려 의견 표명을 유보한 층이 38%로 가장 많았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의원들이 최근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에 따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정부의 메르스 대응 부실을 강조하며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국회 노력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메르스 컨트롤타워는 하지 않으면서 정쟁 컨트롤타워를 자초하는 결과가 된다”며 “국민은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에 몰두하는 청와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을 중심으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시사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