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맹세’ 다단계 식구들의 ‘집단 위증극’

입력 2015-06-16 16:47

“회장님, 항상 존경합니다. 상무 진급 영광을 회장님께 돌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업체 ‘금융하이마트’의 간부 A씨는 총괄회장 최모(52)씨에게 이렇게 충성을 맹세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최씨는 앞서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다. 2013년 8월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재판에서 무죄를 받기 위해 업체 간부들을 동원해 거짓 증언을 하게 했다. 바지사장격인 김모(52)씨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운다는 전략이었다.

최씨의 측근들은 충성도 높은 간부들에게 증인신문사항과 허위 답변 내용을 알려주며 위증을 부추겼다. 이들은 재판에 출석해 “최씨가 누군지 잘 모른다. 김씨가 다 벌인 일”이라고 증언했다. 사기 혐의 공범으로 구속된 김씨도 “내가 실제 운영주”라며 최씨를 비호했다. 최씨가 무사해야 사업이 성공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에 범행에 가담했다. 한 퇴직 간부는 위증 대가로 1000만원을 받았다.

최씨가 내세운 증인들이 줄줄이 위증을 일삼으면서 1심 재판은 계속 지연됐다. 불구속 상태인 최씨는 이 기간 다단계 업체의 전국 지점망을 10개에서 33개로 늘렸다. 업체명도 세탁했다. 처음 기소 당시 불법 유사수신 혐의 피해자는 2400여명, 피해액은 100억여원이었는데, 피해자 6000여명과 피해액 930억원이 새로 늘었다. 21억원을 뜯긴 피해자도 있었다. 최씨가 투자했다고 내세운 상장사는 실체가 없는 폐업 직전의 회사였다.

최씨가 꾸민 집단 위증 정황은 검찰이 최씨의 휴대전화 메모리를 복구하면서 드러났다. 한 간부는 최씨를 모른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뒤 최씨에게 “이긴 자가 강한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 고군분투하시는 금융회장님. 더욱 분발하겠습니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부장검사 정진기)는 최씨를 위증교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위증 범행에 가담한 간부 19명도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사기 피해액 중 400억여원이 최씨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