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3연패’ 박인비,살이있는 전설이 되다

입력 2015-06-15 15:23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키고서야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27·KB금융그룹)가 처음으로 웃었다. 함께 챔피언조에서 자웅을 겨룬 김세영(22·미래에셋) 및 두 캐디와 포옹을 나눈 박인비는 이어 남편 남기협(34)씨로부터 따뜻한 축하 포옹을 받았다. 스윙 코치이기도 한 남편은 ‘골프 여제’로 다시 돌아온 아내의 손을 들어 이날의 승자임을 최종 확인했다. 박인비가 10년 만에 메이저 대회 3연패의 주인공이 되며 세계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박인비는 15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해리슨의 웨스트체스터 컨트리클럽(파73·6670야드)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마지막 4라운드에서 버디 5개를 잡아냈다. 사흘 연속 노보기 행진을 펼치며 최종 합계 19언더파 273타를 적어낸 박인비는 김세영을 5타차로 따돌리고 2013년과 2014년에 이어 3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메이저 대회 3연패는 그동안 LPGA 투어에서 단 2명밖에 없었다. 메이저 15승의 패티 버그(미국)가 1937∼1939년 타이틀홀더스 챔피언십에서 연속 우승했고,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2003년∼2005년 LPGA 챔피언십을 3연패했다. 박인비가 세 번째로 대기록을 작성한 셈이다.

박인비의 이날 선전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와 침체된 사회 분위기 속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로 전 국민들이 우울해 하던 1998년,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가 ‘맨발 투혼’으로 US여자오픈을 석권하던 때를 연상시켰다. 당시 선전을 TV로 지켜본 ‘세리 키즈’의 한 명인 박인비가 박세리를 이어 국민의 희망의 떠오른 것이다.

박인비는 우승 뒤 “3년 연속 우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꿈이 현실이 되니까 얼떨떨하고 기분이 좋다”면서 “패터 버그, 아니카 소렌스탐 등 전설적인 선수들 옆에 내 이름을 올리게 돼 영광이다. 내가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기뻐했다.

박인비는 메이저 대회에서 1승만 추가하면 7승의 줄리 잉스터(미국), 카리 웹(호주)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현역 선수 가운데 박인비 보다 많은 메이저 승수를 쌓은 선수는 잉스터와 웹, 그리고 미국남자프로골프(PGA) 투어의 타이거 우즈(미국·14승) 뿐이다.

우승 상금 52만5000 달러(약 5억9000만원)를 보탠 박인비는 시즌 상금 142만2500달러로 이번 대회에서 처음 컷 탈락을 경험한 리디아 고(94만2476달러)를 제치고 상금 선두로 나섰다. 세계랭킹에서도 리디아 고를 2위로 끌어내리고 4개월여 만에 1위로 복귀했다. 또 이번 시즌 가장 먼저 3승을 올리면서 평균타수 1위도 굳게 지켰다.

박인비는 이제 메이저 대회 4개를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미 3개의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그는 그동안 번번이 우승을 놓친 브리티시 여자오픈과 2013년부터 5번째 메이저대회로 승격한 에비앙 챔피언십 석권이 다음 목표다.

박인비는 “시즌 시작 전에 이왕이면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기를 원했다. 일단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숙제를 했으니 앞으로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집중해서 우승하도록 노력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