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성서울병원장이 감염내과 전문의라는 데 주목했습니다. 병원이 병원 내 직원과 의사, 간호사, 환자 등에 대해 충분히 파악을 해서 관리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방문객이나 보호자는 우리가 같이 파악을 해 추가적 전파가 없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지나놓고 보니 그런 부분에서 미흡한 면이 조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 14일 브리핑에서)
이 발언은 왜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감염 의심자 관리에 실패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대형 민간병원에 국가적 위기상황의 관리를 거의 전적으로 맡겼다. 병원은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어긋나게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국가와 민간병원의 희한한 ‘밀월’이 메르스 사태를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1차 명단 고작 150명=보건 당국과 삼성서울병원 등에 따르면 이 병원은 응급실에서 14번 환자(35)와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을 순차적으로 당국에 제출했다. 먼저 지난달 29일 14번 환자가 감염 의심자라는 사실을 통보받고 이튿날인 30일 전화번호 등이 빠진 대략적인 명단을 당국에 냈다. 상세 정보가 담긴 1차 공식 명단을 제출한 건 지난달 31일이다. 병원 측은 1차 명단에 약 100여명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은 150명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해 관리를 시작했다는 입장이다.
병원이 2차 명단을 낸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14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명단은 수시로 제출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일 브리핑에선 “76번 환자와 관련한 명단을 3일 제출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675명)을 완전히 받은 건 지난 4일쯤으로 보인다. 14번 환자의 감염이 확인된 30일로부터 5일이나 지났을 때다. 권준욱 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삼성서울병원과 관련해서는 격리 대상이 600여명”이라고 전했다. 서울시는 이때 브리핑을 보고 격리 대상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31일 한 차례 복지부로부터 격리 대상 명단(약 140명)을 받았을 뿐 4일까지는 추가 명단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삼성서울병원이 왜 초기에 접촉자를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나눠 당국에 제출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국과 병원 사이에 어떤 식의 의사소통이 이뤄졌는지도 불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접촉자 명단이 늦게 제출됨에 따라 관리도 늦게 시작됐다는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있던 환자·보호자 가운데서는 지난 6일 이후 격리 대상임을 통보받은 사람이 많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지난 7일에서야 공개됐다. 그 사이 자신의 감염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한 응급실 방문객과 체류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새로운 감염 경로를 만들어 냈다.
◇손 놓고 있던 보건 당국=더욱이 병원이 제출한 명단에 병문안객이나 보호자는 빠져 있었다. 보건 당국은 이에 대한 대처를 뒤늦게 시작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자체 역학조사를 벌이는 한편 개개인의 신고도 받겠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지난달 27~29일 응급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서울병원의 대처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는 새롭게 드러나는 환자를 보면 알 수 있다. 138번 환자의 경우 이 병원 의사다. 14번 환자가 있던 응급실에서 근무했었다. 비슷한 조건에 있던 의사(35번 환자)가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138번 환자는 그 이후에도 자가 격리되지 않았다. 병원의 안전요원과 이송요원도 격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의문은 왜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 방역 관리를 맡겼는가다. 당국은 평택성모병원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었다. 평택성모병원에는 당국의 역학조사관이 직접 나가 밀접 접촉자를 분류했다.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 관련해서는 ‘명단을 제출받았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평택성모병원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역학 조사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접촉자 관리에 한 차례 실패한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서도 다시 실패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병원 안에서는 메르스의 전염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목격했으면서도 삼성서울병원의 접촉자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건 당국이 그동안 삼성서울병원에 전권을 맡겼다”면서 “정부와 시가 참여하는 특별대책반이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서울병원에서의 방역 관리 실패가 보건 당국 차원을 넘어선 정부 전체의 실패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지난달 말부터 메르스 사태는 이미 복지부 차원에서는 관리가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도 복지부의 인력과 영향력만으로는 어려웠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콘트롤 타워가 또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라면서 “다른 부처의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철저한 역학조사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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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4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