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협회 회장은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인물 중 하나다. 메르스 확산 상황을 주시하며 회원병원들의 목소리를 모아 보건 당국과 방역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인다.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병원협회 건물에서 박상근(68) 병원협회장을 만났다. 사무실 앞에는 일회용 마스크와 여러 종의 손세정제가 비치돼 긴장감이 돌았다. 박 회장은 최경환 총리대행 등과 함께 메르스 발생 병원인 대전 건양대병원을 찾았다가 막 돌아온 길이었다. 회장실 밖에는 결재서류를 든 직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바쁜 그의 일정을 짐작하게 했다.
-2003년 사스 때와 달리 방역체계가 질타를 받는 이유는.
“사스는 이미 중국이나 홍콩에서 창궐해 국제적으로 충분히 이슈화가 된 상태였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대처방식을 참고할 수 있었다. 이번은 그 반대 경우라고 보면 될 것이다. 2012년 중동에서 메르스가 발병한 뒤 우리도 어느 정도 대비는 했다. 하지만 에볼라 사태가 터지면서 미흡했다. 우리 국민들의 중동 방문이 매우 잦지만 그간 별일이 없어서 경계심이 느슨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메르스가 중동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초동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 우리 특유의 병원문화를 지적하는 분들도 많다. 병원 선택권이 전적으로 환자에게 있어 병원을 쉽게 옮겨 다닐 수 있다. 병원 내에서도 방문자와 간병인이 모두 자유롭게 드나드는 구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환자를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인식에 약간의 변화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병원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소요 재원이나 인력 등에 대한 논의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환자 발생 추세를 어떻게 전망하나.
“잠복기를 고려하면 정부 발표처럼 이번 주가 고비라는데 이의가 없다. 4차 감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6월 말까지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태 초기 바이러스 변이와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또 다른 1번 환자가 나타나게 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되지만 외교부 등이 철저한 방어막을 치고 있다니까 기대한다.”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것인가.
“최초 발생 병원 역학조사 결과 에어컨 필터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문가 견해를 종합하면 공기감염이라 보기 어렵다. 메르스는 기본적으로 동물 질환이다. 사람끼리 전염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메르스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치사율이 중동의 40% 수준과 달리 1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급성폐렴의 사망률 5∼7%와 유사한 수준이다. 메르스는 치료약이 없는 것이지 치료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같은 의료수준에서는 치사율이 높지 않을 수 있다. 초기에 신장에 치명적이라는 관측도 있었는데 일단 폐에 악영향을 준다. 그러면 혈액 내 산소량이 떨어지면서 신장을 비롯한 각종 장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가 사태 확산을 초래했다는 지적인데.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항 등 검역소에서 걸러졌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진료했던 병원이나 당국, 환자에게 초기에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 방역체계 전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환자들이 1차적으로 찾는 중소병원의 감염병 관리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국내 감염전문의가 약 200명 수준이다. 모든 병원에서 감염전문의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택성모병원의 경우에도 감염내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대학병원의 호흡기내과 교수 경력을 가지신 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감염 감시를 위한 표준 매뉴얼과 운영체계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 전체 의료자원이 100% 가동되어야 겨우 병원이 운영되는 구조이므로,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다. 제도 개선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자원의 적절한 투입이 고려돼야 한다.”
-병원 명단 공개를 두고 정부와 병협의 의견이 달랐던 것인가.
“병원 공개를 반대한 적이 없다. 다만 공개 여부에 따른 득과 실을 검토하고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 게 더 중요했다. 협회 상임이사회에서는 해당 병원에 직접 가서 점검하고 냉철히 판단해 반드시 필요하다면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신중하지 못한 고발 형식의 명단 공개는 비지성적이며 비의료적이다. 감염지역이나 감염자 신상정보도 마찬가지다. 향후 정보공개의 득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
-‘메르스즉각대응팀’에 병원폐쇄명령권 등 전권을 부여하도록 하겠다는데 협회의 의견은.
“지금 의료현장은 참담하다. 최 총리대행에게도 말했지만 이번에 병원이 받은 상처는 쓰나미보다 크다. 진단과 진료를 위해 감염위험을 무릅쓰며 밤새워 일했는데 기피대상이 됐다. 미국 휴스턴의 에볼라 치료 병원이 끝내 문을 닫은 사례처럼,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강제명령권을 주면 사기가 저하되고 진료가 위축된다. 의료인은 ‘개념 없는 사람’이 아니다. 현 시점은 하나가 돼 확산을 막아야 할 시점이다. 지금이라도 전문가팀을 짜서 병원을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추출하되, 잘하고 있으면 잘한 대로 평가해줘야 한다. 또 코호트 격리를 받고 있는 병원 현장의 어려움을 파악해 인력, 보호장구, 소독용품 등에 대한 신속한 지원을 해야 할 때다. 실질적인 문제로, 최소한 메르스 환자를 발견하고 추가감염을 막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에 대해서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 2009년 신종플루 때는 450개 치료거점병원에 150여억원과 인공호흡기 250대(50여억원)가 지원됐다.”
-향후 방역 체계 개선 방향은.
“사후약방문이지만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보건복지부의 업무 중 국민생명과 직결되는 보건의료 부문은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보건예산이 3%밖에 안 된다.
정부도 국민도 암만 중증질환으로 안다. 암센터는 우후죽순 생기고 보상보험도 확대되는데 전염병에 대해서는 전문병원조차 없다. 이제 국가도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글로벌 톱 수준의 방역 프로토콜을 만들고 2∼3년에 한 번씩 점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메르스 대처요령을 설명해 달라.
“개인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부에서 메르스 노출 병원과 기간을 공개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접촉 여부를 판단해 ‘메르스 환자 행동요령’에 따르기 바란다. 접촉이 우려되면 병원부터 가지 말고 먼저 보건소에 전화로 연락해 절차를 따라야 한다. 병원을 무작정 기피하는 것은 위험하다.”
◆박상근 대한병원협회 회장은
인제대 백중앙의료원 원장으로 지난해 5월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 의대 출신 신경외과 전문의로 고려대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병원협회에서 법제이사 경영위원장 총무위원장 사업위원장 보험위원장 등의 요직을 거쳤다. 2010년부터 병원협회 부회장, 2012년부터 서울시병원회장을 맡다가 병협 회장으로 취임했다.
△상계백병원 신경외과 과장, 인제대 신경외과 주임교수, 상계백병원 원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환자분류체계검토위원장(2013∼14) △대한임상보험의학회 회장,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단장(12∼14)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사(08∼14) △대한신경중환자학회 회장(10∼12)
◆대한병원협회는
1959년 7월 창립된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의 대표 단체다. 12개 시·도 지역병원회와 9개 직역병원회 등으로 구성돼 병원의 육성 및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연구, 추진하고 병원요원 교육의 일익을 담당한다. 회원 병원들의 지위 향상을 도모하며 병원 간 국제교류 역할도 맡고 있다.
59년 국립의료원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할 당시 기관회원 57명, 개인회원 11명 등 68명의 병원장으로 출발했다. 지난 4월 현재 회원병원은 3046개, 병상 수는 51만5480개다. 종합병원이 328개, 병원이 1436개, 요양병원이 1282개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
[직격인터뷰] “암센터는 우후죽순, 전염병 전문병원은 한 곳도 없다” - 박상근 병원협회장
입력 2015-06-12 10:33 수정 2015-06-12 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