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11일 위헌 논란에 휩싸인 국회법 개정안의 정부 이송을 일단 보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시사 방침을 분명하게 밝힌 만큼 위헌 소지를 없애기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시 한번 시간을 벌어 여야 합의를 압박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청와대 입장이 워낙 강경해 예정된 충돌을 잠시 뒤로 미뤄둔 것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鄭의장 “野에 시간줄 것”=정 의장은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통과한 58개 법안을 정부로 이송했다. 담뱃값 경고 그림·문구 삽입을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개정안,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로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이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은 빠졌다. 여기엔 야당의 입장 선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새정치연합은 정 의장이 제시한 국회법 중재안에 대해 ‘적극 검토’에서 ‘수용 불가’로 방향을 틀었다. 청와대의 반대 기류가 전해지면서다. 그러다 이날 “의장의 중재 노력을 살려야 한다”고 다시 입장을 바꿨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 의장과 면담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에 대한 청와대 태도는 국회를 무시하고 국회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태도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장이 중재안을 통해 헌법적 가치를 살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에 공감하고 같이 노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은 12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법 중재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런 의견을 전달받은 정 의장이 야당에 충분한 논의 시간을 주기 위해 이송을 잠시 보류한 것이다. 당초 의장실은 이날 오전 정부 이송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최종 방침이 확정된 건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의장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 방침을 밝힌 국회법 개정안을 그대로 넘길 경우 국회와 정부, 여야간 충돌을 피할 수 없다”며 “그 전에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장 중재안은 국회의 시행령 수정·변경 ‘요구’를 ‘요청’으로, ‘정부는 처리하고 보고한다’를 ‘검토해 처리 결과를 보고한다’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강제성의 수위를 낮춰 국회의 행정입법권 침해 논란을 털고 가겠다는 취지다.
◇국회법 개정안 손 봐도 충돌 불가피=정 의장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 정국은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권을 명시한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식의 자구 수정만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법 개정안이든, 정 의장 중재안이든 정부로 넘어가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이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간 정면 충돌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또 여권 내 당청 갈등, 계파간 불협화음이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새누리당에선 이번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끈 유승민 원내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대통령이 재의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재의결할지, 표결하지 않고 부결시킬지를 한바탕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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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1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