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방미 연기] 여론악화에 내치에 주력… 외교적 입지 축소 우려도

입력 2015-06-10 20:33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연기 결정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인한 국민적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 방문에 오르는 게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국제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상외교 이벤트를 개최 직전 연기하는 큰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우선은 내치(內治)에 진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안전 최우선…여론 악화에 결국 연기=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0일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 결정을 발표하면서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국내에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국민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기존 행정안전부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등 안전을 부각시켰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국민안전처를 출범시키며 이 문제를 챙겨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여론 악화다. 메르스 사태 확산 또는 진정의 중대한 고비를 맞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외국 방문길에 오르는 것에 대해 여론이 급속히 악화된 상황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 정부의 미숙한 초동대응, 청와대가 초기부터 직접 나서서 상황을 진두지휘하지 못한데 대한 비판 여론이 겹치면서 박 대통령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메르스 발생 이후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급락했다.

여기에 지난해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5월19일 대국민 담화 발표 직후 이뤄진 박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 당일 남미 순방 출국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상황도 감안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안보 현안과 경제협력을 이끌어내는 대통령의 정상외교를 무작정 ‘외유(外遊)’로 치부하는 ‘묻지마 식 주장’에 박 대통령이 떠밀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외교적 부담 감수 속 메르스 종식 올인=박 대통령은 앞으로 메르스 사태 종식을 위해 국정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최근 각종 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든 정부부처는 물론 지자체, 민간기관, 일반 국민의 협업과 협조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분간 박 대통령의 모든 주요행보는 메르스 사태 조기 종식에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 결정이 한국 외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핵프로그램 개발 등 계속되는 도발 위협과 공포정치 등 불안한 북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안보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데, 정상 간 심도 있는 논의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일 정상회담, 곧 이뤄질 미·중 정상회담 사이에서 우리 국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미국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 선언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최대한 구축할 수 있는 계기인데, 결국 무산됐다는 의미다.

청와대는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은 미국 측과 이번 방문의 주요 안건인 한반도 정세 관리 및 동북아 외교안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경제협력과 한·미 간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