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탕감 신청’ 청년 채무자들의 삶 엿보니

입력 2015-06-10 15:51 수정 2015-06-10 20:17

배모(31·여)씨는 수년 전 홀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빚에 눌리기 시작했다. 대학생이었던 2009년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로 36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공부를 더하고 싶어 900만원을 추가로 빌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학비 부담이 커 한 학기만 다니다 그만 둬 제적됐다. 남은 건 대출금 1260만원. 매월 상환해야 할 원리금은 24만원 정도인데, 9개월째 내지 못했다. 무급 인턴직원으로 일하는 그에겐 큰돈이었다.

지난 4월 중순 배씨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채탕감’ 광고를 접하고 ‘청춘희년운동본부(청희본)’에 전화를 걸었다. 청희본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희년함께 등 7개 기독시민운동단체들이 청년·대학생들의 부채탕감을 지원하기 위해 올 초 만든 단체다. 청희본은 정부 학자금 대출액을 6개월 이상 연체한 35세 이하 청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상담과 재무확인 등을 거쳐 일정액을 지원한다는 광고를 내고 신청자를 모집 중이었다.

청희본으로부터 200만원을 지원받은 배씨는 일부 대출금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하고 이자율을 기존 7%에서 2.9%로 낮춰 상환 부담을 대폭 줄였다.

청희본은 배씨를 포함해 학자금 대출 연체자 10명을 대상으로 총 2000만원을 지원했다. 지원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27.2세로 1인당 평균 부채액은 1268만원, 평균 연체기간은 7.5개월이었다.

김덕영 청희본 사무처장은 10일 “지원 대상자들을 일일이 상담하면서 청년 채무자들의 삶이 매우 고립돼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금융정보에 대한 무지와 금융권의 무분별한 대출영업과 광고 등에 따른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모(31·여)씨는 학자금 대출 잔액 320만원을 포함해 총 770만원의 빚을 안고 있었다. 이 가운데 450만원은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으로 연이율이 무려 34.9%였다. 한씨는 “신용카드를 만들어 쓰다가 돈을 쓰는 감각이 무뎌졌고, 카드대금이 부족해 결국 대부업체의 돈까지 손을 댔다”고 전문가와 상담할 때 털어놨다. 아르바이트와 성적 장학금으로 학비 부담을 덜어왔던 대학생 전모(24·여)씨는 한 학기 장학금을 놓친 뒤 급하게 학비를 마련하느라 무심코 대부업체에서 300만원(연이율 19.9%)을 빌렸다가 곤경에 빠져 청희본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다.

청희본은 부채탕감 지원자들에게 1인당 200만원 안팎씩 지급해 저금리 대출 전환 등을 돕거나 부채 규모를 줄여줬다. 이어 가계부쓰기와 생애설계 등 재무관리방법을 포함한 금융교육도 병행했다. 김 사무처장은 “청년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상담인원을 확충하고 교회와 기업체 등 후원 단체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며 교계의 관심을 요청했다.

한국장학재단 등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연체자는 지난해 말 현재 4만4620명이며, 이 중 6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유의자’는 2만231명(45.3%)에 달한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