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바실리키 멜리오(56·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5년간 일해온 주(州) 소유 은행이 매각되자 해고의 공포가 찾아왔다. 25%까지 치솟은 실업률을 감안하면 해고된 뒤 다시 일자리를 얻기란 불가능해보였다. 그녀는 조기 퇴직해 연금생활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바실리키의 연금은 벌써 35%나 깎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려워 가끔은 잠도 오지 않는다”고 그녀는 털어놨다.
최근 은퇴한 파나지오타 스타토폴루(55·여)도 예상보다 적은 월 700유로(약 88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다른 은퇴자들처럼 그녀도 절약하면서 산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자식까지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그리스와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는 사이 연금생활자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구제금융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채권단은 그리스에 연금을 최대 48%까지 삭감하는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긴축정책을 실시하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었다. 은퇴한 부모들은 연금으로 젊은 실직자들도 먹여 살려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은퇴자들을 부양할 젊은 노동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그럴수록 이들의 빈곤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은퇴한 그리스인의 45%가 빈곤선(poverty line) 또는 그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빈곤선은 적절한 생활수준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 소득 수준으로, 국제 빈곤선은 하루 1.25달러다.
그리스의 연금 시스템은 경제 위기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NYT는 분석했다. 2012년 그리스 연금펀드는 가치가 하락하면서 보유기금의 60%에 달하는 100억 유로(약 12조6000만원)의 손해를 입기도 했다. 채권단은 정부에 연금 시스템을 빠른 시일 내에 개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채권단이 그리스에 연금 삭감과 증세 등을 포함한 경제개혁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내년 3월 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보도했다. 채권단의 개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그리스 정부는 새로운 제안서를 조만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채권단을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스가 정치적으로 힘든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지지부진한 그리스 협상… 절망에 빠진 연금생활자들 “잠도 안 와”
입력 2015-06-09 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