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떻게 오늘날 대표적인 친미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미국의 ‘의료 외교’에 있었다.
영국 BBC방송은 8일(현지시간) 65년 전 미국과 사우디가 우방이 된 첫 단추 격인 미국의 의료 외교 일화를 소개했다. 1950년 당시만 해도 미국과 사우디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1949년 미국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에서는 반미 정서가 팽배해져 있었다. 또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와 미국 석유회사 간 이윤 배분 문제도 양국 간 갈등요인이었다.
껄끄러운 관계를 푼 계기는 사우디 국왕의 관절염이었다. 당시 70세가 넘은 고령의 이븐 사우드(1876~1953) 국왕이 만성 골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사우디 왕실의 고민도 커졌다. 자국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진료를 했지만 국왕의 증세는 차도가 없었고, 국왕 역시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를 거부했다. 이에 왕실은 비밀리에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인 제임스 차일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국무부에 의료진 급파를 요청하는 전보를 띄웠다.
다소 의외의 요청이었지만 해리 트루먼(1884~1972)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 왕실이 요청한 의료진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치의를 맡고 있던 육군 준장 월러스 그레이엄 장군까지 함께 사우디로 파견했다. 군인이자 의사였던 그레이엄을 파견단에 넣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수일에 걸쳐 10여회나 이뤄진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고, 트루먼 대통령이 자신의 주치의까지 보내준 데 대해 사우드 국왕은 깊이 감복했다.
이듬해 8월 사우드 국왕이 심각한 하복부경련으로 고생했을 때도 미국은 그레이엄을 포함한 의료진을 급파했다. 이로 인해 양국의 우호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이는 양국 간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하는 데 기반이 됐다. 이 모든 임무는 당대에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졌지만, 당시 파견된 의료진이 남긴 사진들을 후손들이 지난해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65년 전 사우디를 우방국으로 끌어들인 미국의 ‘의료외교’
입력 2015-06-09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