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과거의 비극을 덮어버리려고만 하기 때문에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서울문화재단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기를 맞아 당시 민간구조대의 실화를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를 7월 3일 서울시청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선보인다. 당초 24일 공연예정이었으나 메르스 사태로 연기됐다. 명창 안숙선이 작창(作唱)을 맡은 이 작품의 대본은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34)이 썼다. 오세혁은 9일 대학로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유태인의 힘은 ‘기억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나? 우리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사고를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해 세월호 사고가 다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소리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인(人) 서울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작됐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든 이 프로젝트는 서울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을 목소리로 채록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이라는 주제로 동화작가, 영화 PD, 사진작가 등 15명의 기억수집가들이 유가족, 생존자, 구조대, 봉사자 등 100여 명의 시민을 만나 삼풍백화점에 관한 기억을 모았다.
지난해 이 활동을 처음 접한 오세혁은 서울문화재단에 연락해 연극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채록된 내용을 2차 문화예술 콘텐츠로 제작하고 싶었던 서울문화재단은 그의 연극화 시도를 환영하며 아예 판소리 대본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오세혁은 “채록된 내용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드라마이자 역사였다”면서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처음엔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엔 내 욕심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했는데, 안숙선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정리됐다”며 안 명창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젊은 연극인들 가운데 드물게 노동연극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연극을 통한 사회참여에 앞장서 왔다. 특히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이후 경기도 안산에 극단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을 설립하고 10년 가까이 활약해 온 오세혁은 지난해 세월호 사고로 가슴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그가 이끄는 극단 걸판이 안산의 중·고등학교 연극반들을 지도해 왔고 여기에 단원고도 포함돼 있었다. 사고로 제자들을 잃은 그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고를 잊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며 “지금은 개인적으로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 세월호를 글로 쓸 수 없지만 언젠가는 꼭 다루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서울문화재단은 또 24일부터 7월 5일까지 시민청 시민플라자에서 ‘기억 속의 우리, 우리 안의 기억, 삼풍’ 전시회를 개최한다. 당시 기록물과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가 상영되고, 시민들의 기억을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는 부스도 설치될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삼풍백화점 참사를 판소리로… ‘유월소리’ 오세혁 “비극 덮기만 해서 반복되는 게 아닐까요”
입력 2015-06-09 16:22 수정 2015-06-09 2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