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는 어떨까요.” “그 배우는 사극은 안 해요.” “△△△씨도 괜찮아 보이는데요.” “예전 작품 스태프 사이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들리던데….” “그러면 안 되겠네요.”
TV 드라마 제작진의 ‘캐스팅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흔한 대화다. 캐스팅이 감독이나 연출자 고유의 권한인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감독, 작가, 캐스팅 디렉터 등이 함께 모여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캐스팅 테이블에는 누구든 올라올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이유로 쉽사리 밀려날 수 있다.
이런 캐스팅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종합 콘텐츠 기업 CJ E&M의 TAR/캐스팅팀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미생’의 ‘박과장’ 김희원, ‘응답하라 1994’의 ‘삼천포’ 김성균, ‘식샤를 합시다 2’의 ‘백수지’ 서현진 등이 캐스팅팀의 안목에 걸린 대표적인 이들이다.
팀 주축인 양성민 팀장(37)과 김민수 과장(37)이 최근 자신들의 캐스팅 경험을 녹여 ‘스스로 빛나는 배우를 찾습니다’라는 책을 한 권 냈다.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 바닥(연예계) 이야기’다.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짚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두 사람을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나 ‘캐스팅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캐스팅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 팀장은 캐스팅팀을 ‘중매쟁이’라고 표현했다. “감독이 욕심을 내는 지점, 배우가 원하는 지점이 달라요. 가급적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주는 거죠. 최종 목표는 시청자나 관객을 만족시키는 겁니다.”
캐스팅은 ‘최선’을 찾아내는 것이지 ‘최고’를 선택하는 작업이 아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연기력을 갖고 있거나 모두를 압도할만한 스타처럼 ‘경지’에 오른 정도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캐스팅이 되려면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최고의 배우나 스타가 되겠다고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캐스팅에서 밀려날 수 있다. 고집과 집착 탓에 ‘우리와 맞지 않아서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캐스팅에 대한 이런 관점은 팀 이름에도 녹아있다. ‘TAR’은 ‘Talent Artist Relations’의 머리글자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와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작업할 수 있도록 연결한다’는 의미다.
두 사람은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일을 한다. 판에 박힌 이미지 너머의 진짜 모습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희원씨는 영화 ‘아저씨’에서 잔인한 캐릭터로 나왔잖아요. 그런데 직접 만나보면 너무 재밌는 사람이에요. 그걸 끄집어내고 다듬어서 제작진이 찾는 바로 그 인물로 연결시켜 주는 거죠.”(김)
무명 생활이 길거나 오랜 슬럼프를 견뎌낸 배우들도 주목한다. “무명 생활을 오래 한 배우들의 잠재력이 99.9까지 올라왔는데 현재 위치만 보면 놓치기 쉬워요. 힘든 시기를 지혜롭게 견뎌내고 잠재력이 터지기 직전인 배우들은 눈빛이 달라요.”(양) 이렇게 찾아낸 배우가 정우, 조진웅, 박성웅이다.
화면에 비치는 연출된 모습에서 얼핏 자기 모습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놓치지 않는다. “일단 만나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감독, 작가와 직접 만나보면 드러나거든요. 진짜면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거죠.”(김) 사극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 서현진이 ‘식샤를 합시다’ 주인공으로 낙점된 과정도 비슷했다.
캐스팅을 좌우하는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일까. 외모, 재능,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됨됨이’다. 두 사람 책을 보면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영화 ‘타워’의 김지훈 감독,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 ‘삼시세끼’ 나영석 PD 등도 “좋은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드세고 독한 사람이 많지만 연예계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깊이 있는 사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 받습니다.”(김)
“캐스팅은 대개 뽑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빼는 작업이에요. 호감도를 끌어올리고 비호감을 낮추는 작업이죠. 계속 빠지는 배우들이 있어요. 그 배우들은 모를 거예요. 결국 평판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양)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캐스팅은 빼는 작업… 배우는 결국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요”
입력 2015-06-09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