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여자월드컵]월드컵 1세대 김진희.김주희 “소연이는 김치와 김 챙겨 다니던 후배 ”

입력 2015-06-09 16:32 수정 2015-06-09 16:42
김주희 선수(왼쪽) 김진희 경기감독관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2015 캐나다 월드컵’ 결전의 날을 하루 앞두고 있다. 윤덕여(54) 감독이 이끄는 태극낭자들의 목표는 월드컵 첫승과 16강 진출이다. 메르스 때문에 남자 월드컵과 달리 관심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자대표팀이 월드컵 무대를 다시 밟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전 국민의 응원이 꼭 필요한 때다.

한국여자축구의 발전은 힘든 시기를 이겨낸 월드컵 1세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12년 전 2003년 ‘미국여자월드컵’에서의 성적은 3전 전패 1득점 11실점이었다. 초라하지만 여자축구를 키우는 자양분으로는 충분했다.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의 첫 골의 주인공 김진희(34) 경기감독관과 당시 팀 막내였던 작년 11월 은퇴한 김주희(31) 선수를 지난 6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 여자대표팀이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2003년 월드컵 멤버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진희 감독관(이하 진희)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역대 최강 드림팀을 구성했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 여자축구가 더욱 발전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김주희 선수(이하 주희) “12년 전과 비교하면 여자축구의 위상과 저변이 많이 달라졌다. 2개뿐이던 실업팀도 7개로 늘었다. 무엇보다 이번 대표팀은 2010 FIFA U-17 여자월드컵 우승, 2010 FIFA U-20 여자월드컵 3위를 달성한 경험 많은 선수들로 구성됐다.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팀이다. 후배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2003년에는 월드컵에 처음 나서는 기대감과 부담감이 있지 않았나.

진희 “2003년 원래 개최국은 중국이었으나 당시 유행했던 사스 때문에 미국으로 옮겼다. 중국은 개최국 자동출전권이 없어졌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다시 예선전을 치러야 했는데 일본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우리가 일본을 1대 0으로 이겼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부담감보다 자신감이 컸다.”

주희 “힘든 예선전을 치르고 월드컵 출전권을 따낸 뒤 부상자가 속출했다. 황인선, 차성미, 박미경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운이 좋게 월드컵 본선에 따라갔다. 언니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캐나다여자월드컵 대표팀이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예전 1차전에서 브라질과 맞붙는다. 당시 브라질 전을 회상한다면.

진희 “늘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관중이라고 해야 가족과 축구 관계자들뿐이었다. 브라질전 당시 4만명이 가득 찬 경기장에 들어서니 당황스러웠다.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머리가 백지상태였다. 응원소리에 묻혀 선수들끼리 의사소통이 안 됐다. 아직도 브라질이라면 선수는 생각도 안 나고 운동장 분위기만 생각난다.”

주희 “브라질 선수들을 보고 얼떨떨했다. 입 벌리고 감탄만 했다. 막내라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팀과 부딪혀보니 경험의 차이가 느껴졌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노르웨이전에서 1대 7로 패했지만 김진희 경기감독관이 여자월드컵의 의미 있는 첫 득점을 기록했다.

진희 “예선전 2패 뒤의 경기라 심리적으로 가장 부담이 됐다. 후반 30분까지 5대 0의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어 더이상 골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며 수비로 압박했다. 우리의 압박 수비에 당황한 골키퍼가 헛발질을 하는 실수를 놓치지 않고 공을 빼앗아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운이 좋았다. 월드컵 첫골을 질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멋있게 넣은 골은 아니었다.”

-캐나다여자월드컵 첫 경기인 브라질전을 예상해달라.

진희 “사상 첫 16강 진출을 노리는 여자대표팀은 브라질이라는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마르타는 월드컵에서만 14골을 넣은 세계 최고 공격수다. 브라질은 마르타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골을 터뜨릴 수 있는 팀이다. 최소한 무승부라도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지만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주희 “여자축구 FIFA 랭킹 7위 브라질을 상대로 18위 한국이 승리하리간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무승부만 거둬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질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직력이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첫 승과 16강 진출 가능성은.

진희 “이번 대표팀은 선수 구성이 매우 좋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2010 FIFA U-17 여자월드컵 우승, 2010 FIFA U-20 여자월드컵 3위를 달성한 경험 많은 선수들로 구성돼 16강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주희 “여자 선수들에게는 초반 경기 흐름이 특히 중요하다. 분위기만 잘 만들면 스페인과도 해볼만 하다. 코스타리카는 16강에 가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다. 정신력으로 무장한다면 16강, 8강도 가능하다.”

-김진희 감독관의 뒤를 이어 어떤 선수가 첫 골을 넣을 것 같나?

진희 “지소연은 누가 뭐래도 상대팀의 경계 대상 1호다. 이미 세계적인 선수다. 상대팀 선수들이 소연이를 많이 분석해 수비수의 견제가 많을 것이다. 이때 왼쪽 측면 공격수인 정설빈 선수가 공간을 잘 활용하면 첫 골을 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연이가 공수 연결 임무를 잘 수행하면 박희영 선수와 강유미 선수도 측면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주희 “지소연과 박은선이 넣을 것이다. 소연이는 이미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실력을 입증 받았다. 비록 마르타에 비해 열세지만 실력으로는 뒤지지 않는다. 박은선 선수는 뛰어난 체격을 바탕으로 한 돌파력과 골문 앞에서 결정력을 갖춰 기대된다.

-지소연 선수는 어떤 후배인가.

진희 “소연이는 시합 때마다 고추장과 김을 챙기던 막내선수로 기억한다. 요새도 고추장과 김을 챙기는지 모르겠다.(웃음) 그랬던 소연이가 대표팀을 이끄는 선배가 됐다. 선배 누구도 못 한 유럽에 진출했다.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난달 18일 월드컵 출정식을 봤나.

진희 “당연하다. 출정식도 부러웠지만 아이보리 색상의 예쁜 단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 때도 단복을 제공받았지만 구두는 사서 신어야 했다.”

주희 “지난해 11월에 은퇴하지 않았다면 출전하고 싶을 만큼 멋진 출정식이었다.”

-출정식에서 전가을 선수와 지소연 선수가 눈물을 많이 흘렸다. 어떤 의미인가.

진희 “가을이가 출정식에서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살기는 외롭다’며 눈물을 쏟았다. 서러움을 비롯한 감정이 섞였다고 생각한다. 가을이의 눈물에 옆자리에 있던 선수들까지 눈물을 흘리더라. 후배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법은 꾸준히 응원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주희 “선수들이 처음 출정식에 나선 것도, 플래시 세례를 받은 것도 처음이어서 감정적으로 울컥했던 것 같다. 특히 소연이가 부상으로 탈락한 민지를 생각하며 울던데, 기회를 놓친 민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김진희 경기감독관은 2009년, 김주희 선수는 지난해 은퇴했다. 이후 어떻게 지내는가.

주희 “부상 때문에 은퇴했다. 이후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축구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미처 몰랐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진희 “은퇴 후 축구선수 출신의 전문행정가가 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2011년 호주로 연수를 떠나 브리즈번 축구협회에서 심판으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다. 2013년 돌아와 여자축구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기감독관은 축구경기의 시작과 끝을 총괄한다. 목표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들어가는 것이다. 꿈을 이룰 때까지 아마 결혼은 못할 것 같다.(웃음)

-월드컵 첫 경기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진희 “팬들의 기대에 부담이 클 것이다. 후배들이 부담감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골키퍼 정미가 가장 걱정이다. 성적에 부담 갖지 말고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주희 “모든 선수가 부상 없이 돌왔으면 좋겠다. 여자축구 파이팅!”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