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 역사학자들과 일본 역사학연구회 등 16개 단체가 지난달 ‘위안부 역사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낸 데 이어 일본 지식인 281명이 8일 가세했다. 오는 22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과 8월에 나올 ‘전후 70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 발표를 앞두고 ‘아베의 역주행’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발이 크고, 잘못 꼬인 한·일 관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9일에는 일본의 전향적인 과거사 반성의 두 주역으로 각각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이 일본기자클럽에서 ‘전후 70년을 말한다’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이런 움직임에 더욱 힘을 실을 전망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오타 오사무 도시샤대 교수 등이 참여한 이번 성명은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들은 아베 총리에게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가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이웃 여러 나라 사람에 손해와 고통을 초래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다시 표명할 것”을 제언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 피해국들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이들은 “고노 담화 이후 한·일의 연구자·시민은 물론 일본 정부에 의해서도 위안부 제도에 관한 새 자료가 발굴·공개됐다”며 “위안소의 설치·운영·관리는 민간업자가 아니라 바로 일본군이 주체가 돼 했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위안부 강제동원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채 ‘인신매매의 희생자’라는 표현으로 일본의 책임을 회피한 아베 총리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성명서는 또 고노 담화에 근거해 와다 교수 등 일본 시민세력이 주도했던 아시아여성기금 사업의 한계도 인정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의 증거로 이 사업을 거론해 왔지만 민간 모금 형식인 이 기금은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배상 여부가 모호해 많은 피해자들이 기금 수령을 거부했다. 성명은 이 사실을 언급하며 “일본의 사죄 사업이 한국에서는 미완”이라고 인정한 뒤 지난해 6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가 제안한 사실 인정에 기반을 둔 사죄와 배상 등 해결책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성명서는 영어·한국어로도 발표된다.
일본의 일부 학자는 12일 서울에서 한·일 학자들이 개최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하며 양측은 공동성명 발표를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일본 역사학연구회가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 연행에 관여한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라는 성명을 낸 뒤 이어져온 일본 지식사회의 일련의 움직임들이 아베 정권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종선 기자 rememeber@kmib.co.kr
“일본군 위안소 설치·운영 명백하다” 日 지식인들 비판성명 파장
입력 2015-06-08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