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것 봐라 싶은 기사를 봤다. 한 신문이 국내 영화관객들을 상대로 조사한 내용이었는데 올 여름(6~8월) 기대하는 영화로 ‘연평해전’이 꼽힌 거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한창이던 2002년 6월에 발생한 제2차 연평해전을 다룬 영화다. 물론 1위로 뽑힌 할리우드영화 ‘주라기 월드’(14.5%)나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등 톱스타들이 출연한 또 다른 한국영화 ‘암살’(11.9%)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5.3%). 그래도 요즘 세태에 비추어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군인들의 이야기, 그것도 이른바 진보요, 평화요 하는 감상적 민족주의자들이 악머구리 끓듯 떠들어대는 ‘민족 화해’ 타령과는 거리가 먼 남북한 간 무력충돌을 주소재로 한 영화가 기대작에 포함돼 있다니 놀라웠다. 게다가 조사 대상 관객들의 연령비를 보면 20대가 42%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30대(33%)였다. ‘수꼴’로 불리는 노년층이 아닌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 것도 희한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단발성인지, 아니면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추세를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후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왜 그런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잘못된 역사적 전통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나라를 지키는 제복’에 대한 존경심과 자긍심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그 같은 그릇된 풍토를 바로잡는데 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3국시대부터 전해진 민족 고유의 상무(尙武)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뛰어난 군인이었던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를 찬탈한 뒤 자신과 후손들도 자신 같은 ‘역적’에게 당할까 두려워 유능한 군인이 원천적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문인 우대, 무인 천시를 기본으로 모든 제도를 만든 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상무 풍조가 사라졌다. 입과 붓으로 찧고 까부는 인간들만 득실거렸을 뿐 훌륭한 무장은 씨가 말랐다. 이순신은 아주 희귀한,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였을 뿐. 군대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 같은 국난을 당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것은 관군보다 의병들이 더 많았으니까.
오로지 문관만이 사람대접을 받았고 무관은 기껏해야 2류, 3류 인사였다. 그 결과는? 백제 고구려 신라 3국으로부터 ‘싸울아비’, 곧 ‘칼’의 문화를 전수받아 상무의 기풍을 간직해온 일본에 나라를 뺏기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문인 우위, 무인 천시 풍조는 해방 이후까지 질기게 살아남았다. 오죽하면 6·25전쟁으로 나라의 운명이 존망지추에 달렸는데도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제 한 목숨 아까워서였겠지만 군을 천시하는 의식구조가 저변에 깔려 있었던 탓도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뿐인가. 전쟁 이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독재정권이 출현함에 따라 군(인)의 이미지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상무정신의 회복이 더 요원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능률과 효율을 중시하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등의 감투정신 같은,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군사문화’에 대한 반감도 계속 쌓여갔다. 그에 따라 군인과 군대를 다룬 ‘제복영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군사정부 시절 간혹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등 괜찮은 제복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대개는 ‘배달의 기수’류의 수준 낮은 홍보영화 같은 것들이었다. 그나마 군사정부 이후 ‘문민화’가 이뤄지고 나아가 좌파정부의 출범과 함께 이른바 진보 풍조가 만연하면서 제복영화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어쩌다 설혹 만들어졌다 해도 군을 때리거나 조롱하는 쪽으로, 혹은 군을 악역으로 한 영화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추세는 바뀌어야 한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국민은 그들을 아끼고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다.
할리우드를 보라. 훌륭한 ‘제복영화’, 특히 실화든 허구든 훌륭한 군인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들이 하나의 메인스트림을 이루고 있다. 단순히 전쟁을 직접적인 배경으로 한 영화만이 아니다. 알 파치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여인의 향기(1992)’.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퇴역 미국 육군 중령이 그렇게 대단한줄 몰랐다. 파치노가 연기한 프랭크 슬레이드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학생들에게 고자질을 시키는 학교 측을 꾸짖는 사자후를 토할 때 서두에서 자신을 “퇴역 미국 육군중령”이라고 밝힐 때의 그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라니. 본인만 자부심을 갖는 게 아니다. 영화는 내내 슬레이드가 육군중령 출신이라는 데 존경심을 보인다.
다인종 다민족국가인 미국이 국가적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라고 말하지 말라. 새롭게 군사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요즘 영화를 보라. ‘집결호’ ‘건국대업’ 등 중화제일주의를 밑바닥에 깐 ‘제복영화’가 판친다. 전범국 일본도 최근 ‘대동아전쟁의 주역’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미화하는 전기영화를 찍어내는 판이다. 그런데 아직도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현실의 적 북한을 코앞에 둔데 더해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결코 마음 놓을 수 없는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널름대는 한국의 영화계가 ‘무슨무슨 동막골’ 같은 한심한 ‘반(反)제복’영화나 내놓아서야 되겠는가.
얼마 전 이순신장군을 그린 영화 ‘명량’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우리에게는 고대의 무장뿐 아니라 현대의 훌륭한 ‘제복’ 영웅들이 많다. 백선엽 장군, 채명신 장군, 그리고 소속은 미군이지만 한국인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김영옥 대령을 비롯해 이들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전사(戰史)에 빛나는, 영화화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현실의 ‘제복’들이 차고 넘친다. 이들을 소재로 ‘요크상사(1941)’나 ‘패튼(1970)’ ‘지옥의 영웅들(The Big Red One 1980)’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같은 멋진 영화들이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진보’와 ‘민족’을 표방하는 친북, 종북세력이나 얼치기 민족주의자들은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라고 헐뜯는다. 백 장군이 6·25전쟁 때 남한을 공산화하려던 북한의 야욕을 좌절시키고 국군을 훌륭한 군대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게 너무 분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그의 ‘친일 전력’을 강조한다. 실제로 백 장군은 만주군 출신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영화에서 그 부분도 살려주면 된다. 누구든 인생에 공과 과는 있는 법이니 과(過) 부분도 가감 없이 묘사하면 된다. 할리우드가 패튼 장군을 묘사하면서 군인으로서의 천재성은 물론 인격적으로 괴팍한 부분 역시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그러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감동적인 ‘제복영화’가 많아져 제복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넘쳐나기를 고대한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23.훌륭한 ‘제복영화’를 그리며
입력 2015-06-08 13:18